獨·佛서 사역 한인 목회자 4인 ‘유럽 복음화 방안’ 현지 좌담

입력 2013-11-11 17:17


“먼저 침체 겪은 유럽교회서 교훈 얻어야”

최근 국내 선교계에 ‘유럽 재복음화’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한국교회가 이미 심각한 선교지로 변하고 있는 유럽을 다시 복음화하기 위해 나아가야 한다는 개념이다. 현상적으로 유럽의 기독교세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일부에서는 ‘재복음화’라는 용어 사용은 자제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최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호텔에서 장광수(프랑크푸르트비전) 임재훈(슈트트가르트제자) 권병수(프랑크푸르트순복음) 성원용(파리선한장로교회) 목사 등 독일과 프랑스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인교회 목회자들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한 좌담회를 가졌다. 참석자들은 모두 유럽의 복음화를 위한 한인 연합 기구인 ‘미션 유럽’ 임원진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유럽 재복음화’라는 용어가 한국교회에서 오용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면서 한국교회와 유럽교회 간 상호 협력을 통한 동반자 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좌담회 내용.

△장광수 목사=‘유럽 재복음화’라고 표현할 때에는 유럽이 영적으로 심각히 낙후되어 있고 교회가 잠들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물론 현상적으로는 맞을 수 있지만 이 콘셉트로만 유럽교회를 접근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한국교회가 “깊은 문제에 빠져 있는 유럽교회를 살려야 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한국교회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느낌이다. ‘유럽 재복음화’라고 할 때 드는 미묘한 공격적인 뉘앙스가 있다. 차라리 ‘유럽 재부흥’이란 용어를 쓰면 좋을 것 같다.

△임재훈 목사=개인적으로 독일 내 현지 교회와 긴밀하게 연합해서 사역하고 있다. ‘유럽 재복음화’라고 할 때에는 잠들거나 죽어 있는 현지 교회를 우리가 다시 살려낸다는 의미가 암묵적으로 깔려 있는 듯하다. 그런데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물론 ‘유럽교회의 희망’으로 불리는 독일교회마저 오랜 시간 쇠퇴해 왔다.

독일의 경우 부흥은 고사하고 한 해에 15만명 정도가 교회를 떠난다. 이 점을 독일교회가 굉장히 고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교회 내에는 여전히 한국교회가 겸손하게 배울 점이 많다. 무엇보다 한국교회는 먼저 세속화 이후 교회 침체와 쇠퇴를 겪은 독일교회의 경험을 배워야 한다. 그들의 유구한 전통과 문화를 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점은 지난 시절 교회의 쇠퇴를 극복하려고 어떻게 애썼는지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독일교회는 한국교회의 미래 모습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단순하게 ‘재복음화’ 차원으로 독일교회에 접근하면 보다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독일교회 내에서 복음은 여전히 살아 있다.

△권병수 목사=독일에서 살아보니 독일교회 내에 경건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독일의 기독교 정신은 문화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8500여만명의 인구 가운데 약 2500만명이 개신교인이다. 이들이 3.5∼5%에 이르는 종교세를 내고 있다. 그리고 과거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신학을 지원하는 학생들 수준은 최상위권에 속한다. 독일의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은 지금 독일교회 미래에 대해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다시 교회를 부흥시키며 후기 세속사회 속에서 영적 영향력을 미칠 것인가를 깊숙하게 생각하고 있다. 아직 우리가 배울 점이 많다.

△성원용 목사=외면상 프랑스는 선교지임에 분명하다. 18년 전 파리에 왔을 때 나 역시 불타는 선교 열정으로 ‘프랑스 재복음화’의 기치를 들었었다. 그런데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500년이 넘는 프랑스 개신교 역사를 접할 수 있었다. 고난 속에서 유지해 왔던 그들의 영성도 발견했다. 살면 살수록 그들에게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100여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교회가 잠시 부흥한 신앙을 갖고 “당신들을 재복음화시켜야겠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교만하고 철없는 이야기다. 이들의 500년 교회 역사를 생각할 때 재복음화란 말을 함부로 쓸 수 없다.

△임 목사=결국 협력이 중요하다. 재복음화라는 개념보다는 협력 선교가 필요하다. 독일교회에 깊숙이 들어가면 이들이 역시 마르틴 루터의 후예답게 후기 기독교 사회에서 미래교회가 어떻게 존재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모색하고, 대안을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문제는 이들은 서구 신학의 틀과 역사 범주에만 머물렀다는 데 있다. 그래서 한계가 있다. 한국교회가 비서구 교회로서의 경험을 이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교회와 독일교회가 함께 협력해 나갈 때 새로운 미래 교회의 바람직한 모델이 만들어질 것 같다.

△권 목사=독일 전체 인구 가운데 25%가 외국인이다. 독일인들은 다민족 사회에서 어떻게 관용을 유지하고 배려의 문화를 펼쳐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외국인으로서 별다른 차별을 경험하지 못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는 데 독일교회의 역할이 컸다. 심각한 정체를 겪고 있는 한국교회가 앞으로 수적 부흥은 제한적일지라도 사회 속에서의 영향력은 더욱 크게 발휘할 수 있다. 독일교회에서 그런 점을 배울 수 있다.

△장 목사=사실 독일교회의 토양은 매우 좋다. 경건한 영성의 흐름이 아직도 살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영성, 즉 성령 충만한 영성이나 사명과 비전에 헌신하는 열정은 부족하다. 그런 점들을 우리가 도와줄 수 있다고 본다. 서로간의 장점들을 수혈해줘야 한다. 어차피 한국교회도 위기를 겪고 있다. 먼저 위기를 겪은 독일교회의 경험을 배워야 하고, 동시에 새로운 부흥을 모색하는 독일교회에 우리의 것들을 전해줄 사명감도 가져야 한다,

△성 목사=우리는 유럽의 부흥과 복음화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 돕는 자로서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로서 협력을 해야 한다. 친구가 되어 유럽 각국의 역사를 이해하면서 실제 부족한 부분을 도와야 한다. 또한 친구로서 우리 역시 도움 받아야 한다. ‘유럽교회가 죽었다’는 관점에서 탈피해 ‘어떻게 배우고 도울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

프랑크푸르트=글·사진 이태형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