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구원·유희·미래·자유… 격변의 시대 삶 성찰하다
입력 2013-11-11 16:57
김영원(66) 홍순모(64) 김주호(64) 최병민(64) 배형경(58) 등 한국 조각계를 대표하는 중진 작가 5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12월 29일까지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 신관 사미루에서 열리는 ‘인간, 그리고 실존’ 전에 참가한 작가들이다. 다섯 조각가의 공통점이 있다면 미술계의 시류와 거리를 두고 조각을 통해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의 삶을 성찰한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 간담회 자리에 모인 작가들은 조각미술의 현실에 대해 한마디씩 했다. “갤러리에서는 조각 전시가 실종됐어. 돈이 안 되니 불러주는 곳이 없어.”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작품까지 늙어서는 안 돼. 항상 신인의 자세로 작업해야지.” “국내에서는 발붙일 곳이 없으니 늦었지만 외국으로 나가야 해.” “그나마 미술관에서 이런 전시를 열어주니 고마운 게지.”
2011년부터 해마다 중견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새롭게 조망하는 초대전을 열어온 김종영미술관은 올해 다섯 명의 조각가를 초대했다. ‘인간’과 ‘실존’을 내세운 전시 타이틀이 다분히 무겁고 철학적이다. 젊은 작가들의 가볍고 요란한 전시가 판치는 현실에서 인간을 주제로 하는 작품을 통해 삶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자는 의미를 담았다.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을 작업한 김영원 작가의 작품 키워드는 ‘소통’이다. 브론즈로 인체의 겉모습을 조각한 ‘중력 무중력’ ‘그림자의 그림자’ 등을 통해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현대인에 대한 연민을 은유하고 있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항상 인도하소서’ 등 작품 제목을 성경구절에서 인용하는 홍순모 작가의 돌 인물 작품 키워드는 ‘구원’이다.
인천 강화도에서 작업하는 김주호 작가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철판으로 빚었다. ‘대한민국’ ‘해맞이’ ‘나는 본다’ 등 작품에서 세상에 대한 ‘유희’를 읽을 수 있다. 역동적인 율동을 담은 작품 ‘벽’과 ‘하늘풍경’ 등을 내놓은 최병민 작가는 첨단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상황에서 “과연 앞으로 미래에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할 세상은 가능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유일한 여성 작가인 배형경 작가는 ‘묵시-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작품을 선보인다. 사람이 쇠창살에 갇힌 듯한 모습으로 다소 무섭다. 작가도 작업 중에 자신의 작품에 순간적으로 놀라는 때가 있다고 한다. 그는 “창살은 장대비를 표현한 것이고, 어둡고 좁은 구석에서 고독한 인간이 먼 곳을 보려고 올라서 있는 형태는 구속 이후 얻게 되는 자유에 대한 상징”이라고 말했다.
1전시실에는 홍순모 김주호 최병민의 입체작품과 드로잉이, 2전시실에는 배형경의 인체작업과 철 파이프 구조물이, 3전시실에는 김영원의 초기부터 근작까지 13점의 인체작업이 놓였다. 이들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영상물 모니터 2대도 설치됐다. 북한산 자락의 미술관 근처는 요즘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깊어가는 가을, 산책을 겸하며 삶에 대해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02-3217-6484).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