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에티오피아 교민회장 알렉스 합타무씨 “가난한 조국 아이들 저렇게 많은 줄 몰랐다”

입력 2013-11-10 18:52


한국에 사는 에티오피아인들의 모임 회장인 알렉스 합타무(34)씨는 3년 전 우연히 친구를 따라 연세대에 갔다가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학생들은 에티오피아에서 국제NGO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궁금해했는데, 한 학생이 던진 질문이 폐부를 찔렀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도움을 받기만 하는 건가요? 당신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서울 여의도 월드비전 본부에서 지난 7일 만난 합타무씨는 “그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텔레비전이나 거리에서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돕자’는 광고를 많이 보았지요. 하지만 한국말이 서툴러 전화로 신청하기 어려웠어요.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고만 있었는데 ‘그게 아니구나, 나도 책임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어린이 3명을 돕기로 마음먹고 에티오피아로 돌아갔다.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차를 타고 가난한 마을로 달려갔다. 거리에서 7살 아이가 손을 흔들며 차를 태워달라고 했다. 아이는 한참이 지나도 내릴 생각을 안 했다.

“아이에게 물어봤죠. ‘너 혹시 집에서 가출한 것 아니냐’고. 아니래요. 수십㎞ 떨어진 곳에서 내리더라고요. 매일 아침 학교에 가기 위해 새벽 5시에 나온대요. 집에 가보니 아버지가 군인이신데 다쳐서 집에서 쉬고 있고 동생들도 있었어요. 그 아이들을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렇게 조국의 아이들을 돕기 시작했다. 주한 에티오피아교민회장이 된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우리나라 아이들은 우리가 돕자”며 후원을 권하는 ‘사랑의 전도사’가 됐다.

합타무씨는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에서 태어났다. 큰아버지는 6·25전쟁 때 참전한 군인이었고, 자신의 집안도 해외여행을 다닐 정도로 유복했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97년이었다.

“한국에 오니까 아프리카 사람들은 모두 벌거벗고 다니는 줄 알더라고요. 저를 만나면 ‘언제부터 신발 신고 다녔냐’고 물어봐요. 우리 집에 신발이 30켤레나 있었는데. 에티오피아에서도 부자들은 한국인들보다 훨씬 더 잘 살아요.”

그는 한국과 에티오피아를 오가며 커피 무역과 중고차 판매를 하면서 돈을 꽤 벌었다. 2004년엔 한국 여성과 결혼도 했다.

“사실 에티오피아에서 살 때는 우리나라에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줄도 몰랐어요. 한국에 와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면서 고국의 아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은 늘 했죠.”

한국의 대학생과 만난 뒤 직접 고국의 어린이를 돕긴 했지만, NGO를 통해 후원하게 된 것은 또 다른 계기가 있다.

“1년 전쯤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같이 있던 환자분들이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강아지 치료하는 데 70만원을 썼다는 얘기를 들으니 에티오피아 아이들이 생각났어요. 그때 사람들에게 ‘아프리카에는 몇 천원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고 말하니까, 그분들도 돕고 싶기는 한데 NGO에 돈을 보내면 실제로 어린이들이 도움을 받는 것인지 믿지 못하겠다고 해요. 그런데 저는 에티오피아 사람이니까,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해볼 수 있잖아요. 내가 할 일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합타무씨는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마라톤대회에 교민회 동료들과 함께 참여했다. 월드비전 후원자들로 이뤄진 ‘팀월드비전’에 참여해 에티오피아 아이들 3명과 결연을 맺었다. 아픈 다리가 다 낫지 않아 마라톤을 하진 못했지만, 현장에서 에티오피아 어린이 후원 프로그램을 알리고 홍보스티커를 나눠줬다.

“한국에 있는 에티오피아 사람이 300∼400명쯤 됩니다. 넉넉하지 못해도 매달 3만∼4만원 정도는 아껴서 후원할 수 있어요. ‘우리가 먼저 에티오피아를 도와야 한다, 우리가 1명씩 맡아 키울 수 있다’고 얘기하고 다닙니다. 앞으로 이 일을 꼭 이뤄내고 싶어요.”

에티오피아를 어떻게 도우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합타무씨의 눈빛이 반짝였다.

“한국처럼 에티오피아도 우리 스스로 우리를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늘 도움만 받기만 하면 가난이 없어질 수 없어요. 어른들부터 생각이 바뀌어야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생각이 바뀔 수 있는지, 그것을 가르쳐 주면 좋겠습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