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승훈] ‘부산을 향하여’

입력 2013-11-10 18:43

자국의 군대를 다른 나라에 보낸다는 건 정치적인 행위다. 어느 시기, 어느 국가에서도 자국의 군대를 해외로 파병할 때는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하지만 파병된 장병 개개인을 정치의 잣대로 바라보는 건 가혹한 일이다. 지난 2006년 3월 이라크 아르빌에서 느꼈던 단상이다.

이라크로 파병되거나 국내로 귀환하는 장병들이 거쳐 가는 쿠웨이트의 캠프 버지니아에서 만났던 당시 23세 김재원 상병의 말은 지금도 뚜렷하게 떠오른다. 6개월의 파병 기간을 끝내고 귀국을 앞뒀던 김 상병은 “이라크에서 지내는 동안 2002년 월드컵 때보다 더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을 본 것이 가장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무엇이 그토록 그를 자랑스럽게 했을까.

이라크 북부 아르빌주의 동북부에 있는 자그마한 골락 마을에서 열린 잔치를 지켜보면서 그 이유를 얼핏 느낄 수 있었다. 주변 언덕마다 총을 든 경계병들이 서 있었지만 마을 주민과 자이툰 부대원들이 어울려 줄다리기, 씨름을 하며 음식을 나눠 먹는 모습은 우리네 시골잔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을 전체에 오·폐수관 공사를 해주고, 망가진 책걸상밖에 없던 초등학교에 어린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해준 먼 나라 장병들에게 주민들은 고마움을 표시했다. 국내에서 생각했던 파병부대의 모습과는 퍽 달랐다.

부대를 나설 때마다 아르빌 주민들은 자이툰 장병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줬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라크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였던 아르빌 시내엔 테러의 흔적 등 상처가 여전했지만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그 속에서 자이툰 장병들은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이웃이었다.

11일은 ‘빼빼로 데이’이고 ‘농업인의 날’이자 ‘가래떡 데이’이기도 하다. ‘보행자의 날’ 행사도 열린다고 한다. 하지만 한 가지 더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부산을 향하여(Turn Toward Busan)’란 행사다.

미국과 캐나다, 뉴질랜드, 남아공, 터키 등 6·25전쟁에 참전했던 5개국은 부산의 시각에 맞춰 11일 오전 11시 부산을 향해 묵념하는 시간을 갖는다. 6·25전쟁 중 전사한 참전용사들을 기리기 위해서다. 지난 2007년 캐나다의 빈스 커트니(Vince Courtenay, 6·25전쟁 당시 종군기자)씨가 세계 유일의 UN군 묘지인 UN기념공원을 향한 추모행사 개최를 제안하면서 시작된 행사는 올해 7회째를 맞는다. 이날 하루쯤은 머나먼 타국에서 젊음을 바쳤던 그들을 기억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정승훈 차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