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의 여행] 레프 톨스토이, ‘유년 시절·소년 시절·청년 시절’

입력 2013-11-10 18:38


1851년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는 형 니콜라이와 함께 고산족과의 전투가 끊이지 않던 카프카스로 떠난다. 마음속엔 작가가 되겠다는 굳은 결심을 품은 채였다. 연이은 전투와 행군을 통해 그는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하는 동시에 열정적으로 글을 써나간다. 카프카스 근무 첫 해에 그는 ‘유년 시절’을 완성한다. “18XX년 8월 12일, 열 번째 생일을 맞아 아주 멋진 선물들을 받았던 그날로부터 정확히 이틀 지난 날 아침 7시, 카를 이바니치는 파리를 잡는다며 설탕봉지를 막대기에 묶어 만든 파리채를 내 머리 위에서 휘둘러 잠을 깨웠다.”

‘유년 시절’의 이 첫 문장이야말로 질풍노도라고 할 23세의 톨스토이의 문학적 잠재력을 깨운 일종의 벼락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카를 이바니치는 톨스토이의 가정 교사였다. 그런데 이어지는 문장은 톨스토이의 전 생애를 가늠할 수 있는 예언이 담겨 있다. “선생의 몸놀림이 어찌나 서툴렀던지 참나무로 만든 침대 등받이에 매달린 내 수호천사상을 파리채로 건드렸을 뿐 아니라, 죽은 파리는 바로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파리채로 건드린 수호천사상, 머리 위로 떨어진 죽은 파리…. 이 두 개체는 세상과 자신이 불가분의 관계임을 자각하는 한편, 자기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구분하고 주위 상황과 사물을 사고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이 문장은 1인칭임에 주목해야 한다. 톨스토이는 1인칭 서술을 통해 자신의 심리 상태를 진술하는데, 이는 200년 가까운 세월을 지난 현재에도 전기적 방식이 글쓰기의 본질이 되고 있음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소설은 결국 자기 이야기이자 자기 심리인 것이다. 톨스토이의 이 같은 심리주의는 인간 내면의 흐름을 세밀하게 포착하는 언어의 변증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우리는 톨스토이를 만난다. 겨울이면 검고 두꺼운 외투를 입고 옆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톨스토이의 화신이 아닐까 의심해 볼 일이다. 죽은 파리가 바로 톨스토이다. 그게 머리 위에 떨어진다면 축복임이 분명하다. 곧 닥칠 겨울의 실내에도 파리는 떠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