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협상 나선 진짜 이유는? “미국서 자금줄 차단 때문”

입력 2013-11-10 18:21

지난 6월 5일 미국 재무부는 이란 정부가 비밀리에 관리해온 위장기업 38곳을 경제 제재 대상에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기업들은 ‘이맘 호메이니 처형 명령’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모기업 ‘에이코(EIKO)’사와 그 자회사 및 손자회사 37곳이었다.

미 재무부는 “에이코사와 그 계열사들이 자산을 매각하거나 이란의 금융기관들로부터 저리의 융자를 받는 방식으로 거액의 자금을 만들어 이란 정권에 제공해 왔다”고 밝혔었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8일(현지시간) ‘미 재무부의 대(對) 이란전쟁’ 제목의 기사에서 이란이 최근 서방과의 핵협상에 나선 데는 이란 정권의 돈줄이었던 이들 위장기업을 일망타진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도했다.

미 재무부는 수십개의 이란 국영기업들을 오랫동안 추적해 왔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란 정부가 온갖 복잡하고 기발한 방법을 동원해 민간 회사처럼 위장해온 기업들을 적발하는 데 수년간 전력을 기울였다. 전 세계를 무대로 건설회사나 보험회사 등의 간판을 달고 활동해 온 이들을 적발함으로써 재무부는 이란 정권으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외화를 압수하는 효과를 거뒀다. 원유 수출 제재로 한 푼의 외화가 아쉬운 이란 정부로서는 뼈아픈 타격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 기업은 이란 정부가 서방의 금융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마지막 수단으로 설립한 것이었기에 더욱 충격이 컸다. 라이언 크로커 전 이란 주재 미국 대사는 “최근 핵 협상 테이블에서 미국의 이러한 맞춤식 기업 제재에 대한 해제는 이란의 중심적인 요구사항”이라고 말했다.

한편 스위스 제네바에서 사흘간 진행된 이란 핵협상이 높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성과를 내지 못하고 10일 막을 내렸다. 주요 당사국은 열흘 뒤인 20일 협상을 재개할 예정이다. 로랑 파비위스 프랑스 외무장관은 “이번 제네바 협상에서 논의에 진전이 있었으나 끝내 합의를 끌어내진 못했다”며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캐서린 애슈턴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강도 높고 건설적인 논의가 이뤄졌으며 구체적인 진척도 있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우리의 목표는 여전히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다시 모일 것”이라고 말했다.

합의가 불발된 데는 프랑스가 초기 합의안에 대해 좀 더 강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며 이견을 보인데다 이스라엘이 이번 핵협상에 강력히 반발한 때문으로 보인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