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 “기업 뒤통수 치는 직권조사, 2014년에도 늘리지 않겠다”
입력 2013-11-10 17:39 수정 2013-11-10 22:55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8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과거와 차별화된 공정위 운용 방침을 밝혔다. 노 위원장은 기업의 뒤통수를 치는 식의 직권조사보다는 IT 관련 신 시장 등 그동안 들여다보지 못했던 분야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지난 정부에서 강조됐던 물가안정과 동반성장에 대한 공정위의 역할이 올바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삼성-애플 간 특허권 분쟁에 대해 미국의 자국 이익 위주의 판단이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훗날 반성문을 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만난사람=이동훈 경제부장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내년부터 시행된다. 앞으로 조사 계획은.
“일감몰아주기는 ‘돈 몰아주기’로 일종의 배임죄다. 배임의 과정을 미리미리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정위가 일일이 기업 뒤꽁무니 쫓아서 조사하기는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재계가 아웃소싱을 늘려가고 내부거래 분야를 총수일가 지분이 없는 자회사로 개편하고 있는 것은 전례가 없는 굉장히 긍정적인 신호다. 일감 몰아주기 법이 죽은 게 아니라 기업들의 의사결정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전체 흐름이 바뀌면 우리가 할 일이 없어진다. 바라는 게 그것이다. 대기업들이 3, 4세 이어지면서 기득권 활용해서 빵집 같은 것 만들고 자기들끼리 나눠먹으면 대한민국 손바닥만한 곳에서 할 게 하나도 없다.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가 다시 돼야 한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재계의 반발이 여전하다. 한편에서는 경제민주화가 퇴색됐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민주화는 기본 룰이다. 지금 당장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대통령이 경제살리기 이야기 먼저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통령께서 경제민주화 필요 없다고 말한 적 한번도 없다. (정부의 경제민주화 의지를) 의심하지 말아 달라.”
-이렇게 기업들이 일감몰아주기 시행에 앞서 다 준비하면 내년에는 공정위가 할 게 없을 것 같다.
“새로운 분야가 있다. UCC나 애플리케이션 시장 등은 국내에서 우리 공정위가 족탈불급(足脫不及·맨발로 뛰어가도 따라가지 못함)이다. 지금까지 경제민주화 등 현안이 많다보니 신경을 못 썼다. 이런 새롭게 형성된 시장이 진입장벽을 쳐 놓으면 우리 기업은 못 따라간다. 우리 기업이 신 시장으로 가야 하고 그것이 창조경제인데, 창조경제의 길목을 뭐가 막고 있는지 공정위가 예의주시해서 봐야한다.”
-최근 재벌들의 2·3세 경영권 이양 작업은 어떻게 보나.
“재계는 친족분리가 돼야 작아진다. 친족분리라도 해야 투명화되고 그것이 바로 사회환원이다. 총수일가에서 자꾸 떼어 내서 주는 것은 공정위에서 볼 때는 바람직하다.”
-삼성-애플 간 특허권 침해 사건에 대해 공정위가 1년 넘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판사는 결정만 하면 되는데 우리는 법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에 미칠 영향도 생각해야 한다. 미국의 이번 결정에 대해 나중에 중국이 특허 침해하면 미국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나중에 미국이 반성문 쓸 것이라 본다. 우리기업들이 갖고 있는 특허가 많지 않기 때문에 어떤 게 득인지 잘 계산해야 한다.”
-올해 직권조사가 많이 줄었다.
“부인하지 않겠다. 올해 활용할 시간들을 직권조사에 내가 다 허비했을까? 그렇게 생각은 안 한다. 내년에 시간 많아도 직권조사 늘어날까? 신고사건도 많은데 이 조사든 저 조사든 필요한 거 하면 된다. 직권조사 안 해도 제도개선이나 국제카르텔 강화 등 공정위가 안 하면 안 되는 것들은 열심히 할 것이다. 직권조사만을 잣대로 해서 판단하면 안 된다. 옛날 공정위 심결 형태와는 좀 다를 것이다.”
-공정거래법의 국제화를 강조하고 있다.
“옛날처럼 집안에 머무르는 공정거래법이 아니고 밖으로 나가 우리 기업의 반론권을 보장하고 피해를 막는 활동이 필요하다. 1990년대는 해외 시장개방만 얘기했는데 2010년대인 지금은 해외시장에서 우리의 경쟁원리를 구축해야 한다. 중국처럼 자의적인 룰이 되면 우리 기업들이 당할 수밖에 없다. 같은 의미에서 국제카르텔도 중요하다.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서 손해 보는 것은 철저히 막아야 한다.”
-올해는 갑을 논란이 이슈였다. 올해 공정위가 한 역할에 대한 평가는.
“불합리한 갑을 관계는 당연히 정상화돼야 한다. 다만 걱정은 그렇게 되면 갑과 을이 다 잘 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우리 경제가 제대로 가려면 공정성에 더해 수요도 늘고 규제완화도 되어야 하는데 너무 갑을 관계만 부각된다. 갑을 관계 하나만 개선된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취임 200일이 됐다. 공정위가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동반성장, 물가규제, 직권조사 위주 관행이 달라졌다. 지난 정부에서는 공정위가 동반성장위원회와 같은 스탠스를 취하며 경제를 제한한 것들이 많았다. 그것은 공정거래 당국이 할 게 아니다. 부당단가인하 사건을 예로 들면 지금은 ‘부당’에 방점이 있다. 가격은 공정위에서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없다. 혹자는 가격 깎으면 공정위에 다 걸리는 걸로 아는데 그건 아니다. 물가규제는 공정위 본연의 업무가 아니다. 4대강, 동반성장, 물가 등 지난 정부의 공정위 색깔 씻어내느라고 힘들었다.”
정리=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