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필교] 모자람의 감사

입력 2013-11-10 17:51


오십대 중반이 넘은 나이에 젊은이들이 주로 하는 요가강사 자격증 따기에 도전해 당당히 합격한 선배가 있다. 그때부터 예순이 넘은 지금까지 요가 강사로 활동하는 그분이 어느 날,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남편이 고위 공무원으로 은퇴해 연금과 개인연금까지 받는 동갑내기 친구가 있어요. 어려서부터 부유한 데다 결혼생활도 큰 어려움이 없었고, 요즘 3남매가 용돈을 풍족하게 보내주고 있지요. 게다가 가수로 데뷔하여 앨범도 냈고, 그림도 잘 그리고, 음식 솜씨도 뛰어난 재주꾼이에요. 이 나이에도 하루하루 ‘쌀 걱정’을 해야 하는 저는 그이가 늘 부러웠어요. 그런데 요즘 그이가 저를 부러워해요.”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그 친구는 물질적 부족은 없지만, 무엇을 꼭 해내야겠다는 근성이 부족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갈고 닦아야 할 동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풍족하게 사는 친구와 달리 선배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두 가지 일을 하느라 바쁘다. 그 나이에 100만원 수입은 대단한 거라고 자부하면서.

그 선배의 역동적인 삶은 어디서 나왔을까. 있는 시간, 돈, 여건에 뜨겁게 감사할 줄 아는 것은 생활에 결핍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10대에 아버지, 20대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부모사랑에 대한 결핍이 있었고, 모든 일에 속박을 느끼던 38년간의 시집살이를 끝내면서 자유의 결핍을 뼛속 깊이 느꼈다고 한다. 그 뒤 마지막 잠재력까지 끌어내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기에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인 결핍의 환경을 통해 ‘모자람의 감사’를 배웠다고 한다.

내가 그 선배를 부러워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감동하는 능력’이다. 늘 작은 일에도 감동하고 감사하는 그 능력이 삶 속에서 활기찬 긍정 에너지를 이끌어내는 것 같다. 인생 후반기를 열심히 살고 있는 선배는 언제나 자유롭고 당당하다. 패션 감각이 있는 그분은 가끔 아파트 재활용품 함에서 멋진 옷을 건졌다며 손질해 입고 와서 자랑한다.

나 역시 일상의 작은 일에 감사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그 선배가 들려준 ‘모자람의 감사’는 또 다른 차원의 감사다.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열매를 거둬들이는 계절이다.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면 그것도 물론 감사할 일이지만, 기대만큼 열매를 거둬들이지 못했다 하더라도 감사의 틀을 바꾼 ‘모자람의 감사’를 해보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윤필교(기록문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