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이옥희 인도 선교사] 건물 그 이상의 의미

입력 2013-11-10 17:19


먹고 살기 힘들어도 교회건축 헌금하는 불가촉천민들… “아이만은 말씀배워 축복받게 해야죠”

더 나은 미래,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길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삶은 충격 그 자체였다. 문맹, 무직, 빈곤, 질병으로 절망이라는 인생의 천을 운명처럼 걸치고 사는 데칸고원 라열라씨마의 일용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한없이 착잡했다.

에큐메니컬 동역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낮에는 마을을 찾아가 주민들과 함께 기도하며 놀고 저녁에는 그들을 생각하며 울었다. 날마다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마음을 칼로 찌르는 고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달리트’라고 소개했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달’은 ‘깨지다’ ‘부서지다’ ‘으스러지다’는 뜻이고 ‘리트’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였다. 세계사 시간에 배운 인도 카스트 밖의 사람들인 ‘불가촉천민’과 ‘하리잔’이 바로 그들이었고, 오늘날 그들의 공식 호칭은 ‘지정계급(Scheduled Cast)’이다.

우리가 마을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일손을 멈추었다. 나무 아래에서, 마을 공터에서, 교우님 댁 마당에서 자연스럽게 모여 인사를 서로 나누었다. 한번은 어떤 마을에서 기도회가 끝날 무렵 교우들이 헌금하는 것을 보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그들이 헌금하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워서 이유를 물었다. 그들은 교회 건축을 위해 헌금한다고 답했다. 의외였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건물은 지어서 무엇 하게요?”라고 물으니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려고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질문과 답은 이어졌다.

“아무데서나 모여 예배드리면 되는데 힘들게 건물을 지을 필요가 있어요?”

“어디서 모여도 우리는 오래된 찬송과 공동기도만 반복합니다. 그러나 우리 자녀들에게만은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축복받게 해야지요.”

“건물 없이도 말씀을 배우고 축복을 받을 수 있잖아요?”

“우리는 문맹이라 성경도 읽지 못하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으니 언제나 옛 관습대로 살게 돼요. 그러나 우리가 건물을 지으면 누군가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줄 것이고 우리 자녀들이 말씀을 듣고 배우며 자랄 거예요.”

“작은 건물을 지으려 해도 여러분의 헌금으로는 오랜 세월이 걸리는데요? 여러분이 교회 건축을 지금 시작해도 생전에 완성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야 그렇지요. 그렇지만 헌금을 하면서 우리에게 희망이 생겼어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것은 나의 착각이고 오산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 희망을 두고 있는 그들에게 건축 시간의 길고 짧은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교회 건축을 위해 주일마다 날품팔이의 십일조를 아낌없이 바치고 있었던 것이다.

2001년 가뭄과 집중호우로 추수를 망친 농촌마을 카다파 지역의 현실은 가혹했다. 오막살이집에 열쇠를 채우고 도시 근교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가족이 많았다. 따라가지 못한 아이들과 뼈가죽만 앙상한 노인들이 빈집을 지키는 경우가 허다했다.

생명의 고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목회자들과 아무 말 없이 고통을 감내하는 교우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심히 괴로웠다. 어둡고 힘든 현실에 대한 그들의 침묵과 수용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더욱 기막힌 것은 그런 상황에서도 그들이 헌금을 하며 교회 건축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교회가 무엇이기에, 말씀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집착한단 말인가?

그들은 예수님을 맞이할 때까지 교회를 지어야 한다고 했다. 달리트 형제들의 소박한 믿음이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비로소 깨달았다. 그들에게 교회를 짓는다는 것은 단순히 건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빈곤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계속 건축하였던 것이다.

그들에게 교회를 세우는 것은 미래요, 희망이었으며 세상을 향한 저항이며 도전이고 모험이었다. 세상이 낙오자라고 부르는 자기 인생에 대한 예우와 신뢰이자 자존심이며 천국을 향한 길이요 숙소였던 것이다. 한편으로 교회는 그들을 자녀 삼아주신 창조주 하나님의 현존하시는 거처였다.

함께 구원받기 위한 장소로서 교회 건축을 열망하는 그들의 염원이 이루어지길 눈물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교회 건축을 위해 오랫동안 한마음으로 기도해 온 교회, 건축 헌금을 꾸준히 실시해온 교회, 평신도 지도자와 함께 어떤 상황에서도 건축을 완성할 수 있는 교회를 찾아서 한국에 알리기로 했다.

2000년 한국방문 중에 달리트 공동체와 교회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최초로 보고한 서울 한신교회에서 놀랍게도 다섯 분의 교우님이 후원을 약정해 주셨다. 카다파 지역 내 뽀남빨리, 네멜라딘네, 비추왈리빨리, 타디가틀레, 비스와나스뿌람 교회 건물이 그 첫 열매였다.

이어 와스데브뿌람, 순꿀라와르빨리, 순께슬라, 가르게이야뿌람, 삐아빌리마을의 교회 건축에 한국교회가 동참했다. 건축의 열기가 라열라씨마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어디를 가든 하나님의 집을 세우고자 하는 달리트 교우들의 열망과 헌신을 볼 수 있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바람이 불었다. 인도의 현장에 오시는 분들이 감동을 받아서 서로 증언하고 서로 격려하고 소개하는 중에 교회 건축 후원의 열풍이 불었다. 실패도 있고 실망할 일도 있었지만 성령의 바람은 강력해서 10여년 사이 100여개의 교회 건물을 봉헌하도록 은총을 베푸셨다.

모든 교회의 건축후원 스토리는 다 감동적이다. 금·은·패물을 파신 분들, 자녀의 혼수비용을 보내주신 분들, 적금을 보내신 분들, 멸치를 판매한 돈을 장기간 모아 보내신 여신도회,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모아 보낸 남신도회, 몇 년 동안 성금을 모아 보낸 농촌교회, 은퇴연금을 보내신 분들, 보너스를 모아서 보내신 분, 남은 삶을 새롭게 살기로 다짐하고 생활비를 줄이시고 보내신 분들, 청년 시절에 약속한 헌금을 보내신 분들, 환갑잔치 비용을 보내신 분, 자녀들이 준 용돈을 모아서 보내신 분들,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주시려고 보내신 분들, 어머님을 기리기 위한 분들, 달리트 교회를 세우라는 성령의 감동으로 바치고 또 바치는 분들의 마음이 진실로 우리 달리트 형제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많은 교회 건축을 후원해 오신 어느 권사님은 “인도의 교회를 생각하면 마음이 기쁘고 교회가 세워지는 모습을 떠올리면 힘이 솟는다”고 하셨다. 건물에 삶의 희망을 담고 천국에 대한 열망으로 사는 달리트 형제들의 간절한 기도와 호소가 오늘도 하늘로 상달되고 있고, 하나님의 눈길과 마음이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성령에 사로잡힌 한국의 교회가 21세기 사도행전에 참여하고 있다. 아, 참으로 아름답고 소망스럽다!

봉헌식은 마을 대축제다. 화사하게 성장한 남녀노소 교우들이 십자가를 앞세우고 마을을 행진한다. 십자가 다음에 악대가 따르고 그 다음에 춤꾼들이 뒤따르며 춤을 춘다. 교우들은 악대와 춤판에 따라 이합집산을 하면서 거리를 행진하다 정점에 이르러 찬양하며 교회 건물을 여러 바퀴 돈다. 교우들은 인생에서 두 번 맞기 어려운 소속 교회 봉헌예배에 참여하는 영광과 기쁨을 마음껏 맛보고자 한다. 어느 지역 봉헌식에는 다른 계급의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해서 함께 기쁨을 나누기도 했고 지역 의원이 자발적으로 참석해 축사까지 해주었다. 그날만큼은 다른 카스트 사람들도 넉넉한 이웃이 된다.

이옥희 인도 선교사

● 이옥희 선교사

-1956년, 전북 이리여고·한신대·한신대 신대원 졸업, 1991년 목사 안수

-기장 총회·전서노회 1997년 파송

-기장 총회 파송 남인도교단 선교사(현)

-비전아시아미션 파송 인도선교사(현)

-인도독립교단 실맛신학교 한국 협력 책임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