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물 한 모금을 마실 때에도

입력 2013-11-10 18:51


재미있는 사진을 한 장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이 상에 둘러앉았고, 아이들 앞에는 물컵이 한 잔씩 놓여 있다. 긴 턱수염을 가진 인자한 모습의 남자가 가운데 서 있고 아이들은 그 남자를 응시하고 있다. 이 사진에 붙은 제목은 ‘이스라엘 유치원의 물 마시는 시간’이다. 말 그대로 ‘물 마시는 시간’에 물을 한 잔 앞에 놓고서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광경이다. ‘식사 시간도 아닌, 고작 물 한 잔을 마시는 시간이 이리도 거창하단 말인가.’ 내 마음에 일어나는 이와 같은 생각을 떨칠 수 없었지만, 그 내막을 알고 나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유대인들이 가진 신념이란, 물 한 잔을 마시는 모습 속에도 그 사람의 인격과 인생의 자세가 녹아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격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인데, 그것은 아주 사소한 행동 속에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물 마실 때의 예절을 가르친다고 한다. ‘유대인의 밥상머리 자녀교육’에는, ‘소리 내어 마시지 않는다’ ‘마시던 컵을 타인에게 권하지 않는다’ ‘물 한 모금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신다’ 등의 지침이 나온다.

그러고 보면 기드온의 300명 용사를 추리실 때의 일이 생각난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용사들의 숫자가 너무 많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방식’으로 선별하신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사람과 물을 움켜 입에 대고 혀로 핥은 자를 따로 세우라고 하시며, 후자에 속한 사람들 300명을 선발하셨다.

성경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유대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누가 용감한 자인가를 식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또 다른 랍비들은 ‘우상에게 절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시켰다’고 말한다. 혹은 ‘절제력 없는 경솔한 사람들을 제외시켰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떻게 설명하든 한 가지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그들의 사소한, 작은 행동이 자신의 존재 자체를 드러내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주 작은 행동 하나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라는 존재 전체를 평가하는 잣대가 됐다. 그렇다. 작은 행동은 전체를 담아낸다. 부분은 전체를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다.

‘디테일의 힘’에 보면, 중국의 냉동새우 판매 회사가 유럽 수입업체로부터 수입거부를 당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유인즉 1000t의 냉동새우를 검사한 결과 항생물질 클로람페니콜 0.2g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새우껍질을 벗기는 직원들 중 몇 명이 손에 습진 약을 바른 것이 문제였다. 너무도 작은 일이 아닌가.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완전주의에 노예가 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나의 작은 행동이 나를 평가하시는 하나님의 표본조사의 재료가 된다는 사실은 꼭 기억해야 한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 소자에게 하는 작은 행동 하나, 그 속에 내 인생과 인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눈빛을 매순간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으랴. 매사를 주께 하듯 하는 사람, 그가 바로 영적 고수다.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