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수진 (9) “한나호 쫓아내니 다음날 60년만의 큰 태풍이…”
입력 2013-11-10 18:39
지난 25년간 한나호는 동말레이시아 지역에 6번 입항해 케이케이, 산다칸, 타와우, 쿠닷항 등을 찾았다. 동말레이시아는 사바와 사라왁 2개 주로 구성돼 있고 성공회와 침례교, 감리교 등 여러 교단이 화합을 이루며 성장하고 있다.
25년 전 만났던 현지 목사님들은 각 교단 지도자들이 됐고 한나호가 입항할 때마다 찾아와 형제이자 동역자요 친구임을 확인한다. 이들 목회자는 대형교회를 일구어 영어와 중국어, 말레이어로 예배를 인도하며 설교하고 있다.
2009년 한나호가 다섯 번째 방문해 사역하던 어느 날, 우리는 성공회 교회의 기도회 초청을 받았다. 찬양과 간증 형식으로 기도회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사바주 케이케이 항구의 전 항만청장인 데이비드 리 장로가 간증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의 간증은 이랬다.
“한나호가 10년 전 이곳에 들어왔을 때 일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갑자기 고위층으로부터 한나호를 내보내라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저는 한나호가 성탄절을 우리 항구에서 보낼 수 있도록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한나호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항구에는 큰 컨테이너선이 접안을 했는데 바로 다음날 60년 만에 큰 태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나무가 뽑히고 집이 무너지고 도로가 유실됐습니다. 그리고 큰 컨테이너선과 다른 한 척의 배가 태풍으로 육지에 올라와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저는 그때 주님의 섭리를 생각했습니다. 주님은 마치 독수리 날개로 한나호를 지키듯, 태풍 하루 전에 한나호와 선교사들을 피신시켜 주신 것을 말입니다. 쫓겨 나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주님의 보호 아래 안전한 항구로 피신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때의 일들을 지켜보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의 생생한 간증은 동말레이시아 성도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 우리는 이 간증을 들으면서 한나호의 사정을 상세히 알고 있었던 전 항만청 고급관리로부터 잊어버린 하나님의 구원 손길을 다시 기억했다.
또 다른 축복 중 하나는 10년 전 산다칸에서 만난 중국인 화교 형제들이 장로가 되어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한나호에 카페까지 만들어주었고, 사람들을 초청해 매일 저녁 그리스도인들과 찬양과 간증, 교제로 전도할 수 있었다.
당시 나와 아내는 이들 중 정 장로 부부를 만났다. 정 장로는 우리에게 물었다. “우리가 뭘 도와야 할까요. 필요한 게 무엇입니까?” 그러자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 “기름 100t이 필요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알았다”고 말했고 우리가 항구를 떠나기 전까지 100t의 기름뿐 아니라 식품 창고에 음식을 가득 채워주었다. 한나호는 24시간 운행 시 7∼8t의 연료를 사용한다.
지난 4년간 한나호는 이곳 동말레이시아에서 대략 350t의 연료를 공급받았는데, 산다칸의 정 장로 부부의 헌신적인 모금과 성공회 목사님들의 헌금 덕택이었다.
한편 동말레이시아의 모든 항구 정박세가 주정부의 도움으로 면제가 됐다. 이슬람 국가에서 한나호에 정박세를 면제한다는 소식은 이곳 기독교인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다. 현지 기독교인들은 무슬림 정권에 억눌려 있었는데 한나호의 거침없는 기도와 봉사, 전도 활동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신다는 것을 목격하면서 도전을 받았다.
정박세의 완전 면제와 연료 공급은 한나호의 사역을 완전하게 축복하신, 그리고 이슬람권 국가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이었다. 우리는 주신 복을 기억하기 위해 동말레이시아에서 주님이 베푸신 복을 ‘사바에서 넘친 복(Sabah overflowing)’으로 명명하고 주님께 찬송과 영광을 드렸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