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파일] 혈액관리 정책 전환 시급하다
입력 2013-11-10 18:27
C형 간염 바이러스나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AIDS)에 오염된 혈액 관련 안전사고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도 매독 균에 감염된 혈액을 생후 2개월 신생아에게 수혈하는 사고가 발생해 논란이 됐다. 또 혈우병 치료제를 사용한 이후 에이즈에 집단 감염된 환자들과 해당 제약사간 손해배상 소송이 10년 만에 조정으로 마무리되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
정부는 채집 단계부터 수혈 단계까지 안전한 혈액 수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련의 안전사고에서 보듯 우리나라의 혈액관리 정책은 몇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우선 우리나라는 이미 절대적으로 혈액이 부족한 상태다. 고령화 사회에 들어서서 수혈을 필요로 하는 노인 인구가 계속 증가하는 반면, 헌혈을 하는 젊은이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얼마 안 가서 혈액 부족 문제가 국가적 문제로 대두될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책 마련에 여전히 미온적이다.
둘째 수혈은 아주 비싼 치료 방법이다. 환자가 지급하는 돈은 몇 만원 안 되지만, 실제 수혈용으로 가공되기까지 엄청난 관리비가 들고, 그 돈은 모두 세금으로 충당된다. 이는 수혈을 많이 하면 그만큼 ‘혈세’를 까먹게 된다는 얘기다.
셋째 안전을 위해 수혈 치료를 줄여야 한다. 수혈은 절대 안전한 치료 방법이 아니다. 수혈은 수술 후 환자의 감염율과 사망률을 증가시키는 주 원인 중 하나다. 수혈은 그 자체가 일종의 장기이식과 같은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혈액세포 알갱이가 있고 이들이 인체에 들어가면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수혈을 줄이는 정책을 펴도록 각국에 권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보건당국 관계자는 의료진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일 뿐이라고 말한다.
혈액관리, 특히 수혈관리는 철저할수록 좋다. 정작 의료진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 항생제와 항암제는 수시로 감시하고 콩 놔라 팥 놔라 간섭하면서 수혈관리는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혹시 수혈 줄이기 운동이 국내 혈액시장 규모를 줄이는 결과를 낳게 될까봐 지레 걱정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국제 추세를 애써 외면하고, 환자들에게 득보다 실이 많으며 비용도 많이 드는 혈액관리를 이렇게 소홀히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자칫 국민건강에 해가 될 수 있는 수혈때문에 ‘혈세’가 줄줄 새고 있다. 헌혈을 늘려서 수혈 요구량을 맞추는 땜질식 혈액관리 정책은 이제 던져버릴 때가 됐다. 수혈을 줄이는 무(無)수혈 수술 등 다양한 수혈대체요법을 통해 혈액낭비를 억제하고 부족한 혈액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새 정책 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종훈 고려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