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음악이 뜬다] 10대 청소년도… 중년 아저씨도… 술 아닌 음악에 취하다

입력 2013-11-09 04:00


지난달 15일(현지시간) 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서퍼클럽(sufferclub)’.

50대 후반, 어쩌면 예순을 넘어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턴테이블 앞에서 리듬을 타며 디제잉(DJing)을 하고 있었다. 얼굴 주름이 자글거렸다. 머리는 대부분 벗겨져 있었고, 그나마 남은 부분도 하얗게 센 상태였다. 검정색 셔츠, 청바지 차림의 남성은 머리에 헤드폰을 우스꽝스럽게 쓰고 있었다. 이 클럽의 디제이다. 그는 붉은 와인 잔을 한 손에 들고 흥이 난 듯 다리를 구부렸다 폈다 했다.

암스테르담의 클럽엔 중년이 많았다. 한국이라면 아예 출입이 통제됐을 이들이 이곳에선 자연스럽게 음악과 춤을 즐기고 있었다. ‘불금’(불타는 금요일)이었던 18일 밤 클럽 ‘도카’에선 흰 턱수염을 기른 50대 중년이 춤을 추고 있었다. 한 가정의 가장쯤 돼 보였다. 그는 음악에 집중하려는 듯 주름진 눈을 감은 채 몸을 움직였다. 옆에는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있었다. 중년의 아들인 듯했다. 암스테르담의 클럽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중년과 아이는 둘 다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티셔츠에 청바지, 운동화 일색이었다. 다소 쌀쌀했던 날씨 탓에 간혹 점퍼를 입은 이들도 보였다. 클럽을 채운 수백 명의 클러버 중 하이힐을 신은 여성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짧은 스커트도 없었다. 어두운 조명 탓에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여성들의 얼굴엔 화장끼도 없었다. 그들은 클럽에 올 때 꾸미질 않았다. 얼마나 편하게 춤을 출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다른 사람이 뭘 하든 관심 없어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기자 혼자 주변을 두리번댔다.

클러버들은 자리를 이리저리 옮기지 않았다. 이성을 찾아 돌아다니는 이들이 없었다. 몸을 흔들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면 충분했다. 간혹 이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가는 경우였다. 흡연실은 외부에 따로 마련돼 있었다. 클럽 안에선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았다. 술은 허용됐다. 대부분은 한 손에 병맥주를 들고 춤을 췄다. 그러나 과하지 않았다. 클럽 안에는 테이블이 없었기 때문에 술을 여러 병 마실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기껏해야 맥주 2∼3병이 전부였다. 기자가 클럽을 나와 취재 내용을 수첩에 적고 있는데 한 20대 중반 남성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Music makes me high(음악이 나를 취하게 만든다)”라고 했다. 이들은 술이 아닌 음악에 취했다.

클럽이라기보다 차라리 콘서트장에 가까웠다. 그들은 몸을 DJ가 있는 무대 정면으로 향했다. 가끔씩 손을 위로 올리고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가사가 있는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EDM)이 나오면 익숙한 듯 따라 불렀다. 입구 앞쪽에서는 큰 음악 소리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을 위해 이어플러그(귀마개)를 팔았다. 이곳을 찾은 한국인 DJ 한장일(29)씨는 “한국의 클럽은 즉석 만남과 술이 키워드지 그 안에 음악은 없는데 이곳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암스테르담에서 클럽을 찾은 지 보름쯤 지난 1일 서울 강남의 한 클럽을 찾았다. 암스테르담에서 봤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짧은 탱크톱을 입은 20대 여성이 무대 위에 올라가서 춤을 췄다. 남성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환호했다. 여성을 만지려는 듯 손을 뻗치는 남성도 있었다. 이런 모습은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었다. 테이블에는 다양한 종류의 술병이 가득했고, 곳곳에서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인터넷에도 ‘문란한 클럽’을 묘사한 게시물이 넘쳐났다. 최근엔 국내 한 클럽에서 여성이 술에 취한 채 춤을 추다가 옷을 벗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유포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디시인사이드의 ‘클럽’ 게시판에는 온통 ‘클럽에서 누군가를 꼬시려 했다’는 내용의 게시글 일색이었다. 암스테르담과 서울의 클럽 문화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암스테르담=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