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정보수장들의 오욕史

입력 2013-11-08 17:39

영국의 핵심 정보기관은 영화 ‘007’ 시리즈에 등장하는 MI6 그리고 MI5와 정보통신본부(GCHQ)다. MI6는 해외 정보, MI5는 국내 정보, GCHQ는 전자감청을 각각 담당한다. 존 소어스 MI6 국장, 앤드루 파커 MI5 국장, 이언 로번 GCHQ 국장이 7일(현지시간) 영국 의회 정보안보위원회(ISC) 청문회에 출석했다. 영국 정보기관이 대규모 도·감청을 벌였다는 전직 미 중앙정보부(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에 대해 해명하기 위해서였다.

눈길을 끈 것 중 하나는 영국 정보기관의 수장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1992년 이후 20여년 만이라는 점이다. 철저한 보안 속에서 국익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요즘도 불미스러운 사건과 관련돼 전직 국가정보원장들이 거명되고 있는 우리로서는 부러운 일이다. 이명박정부 때 4년 넘게 국정원을 이끈 원세훈 전 원장은 지난 6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된 것과 별개로 중소건설업체로부터 청탁과 함께 1억7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지난달 11일 보석 신청을 냈다가 법원으로부터 기각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노무현정부 시절 국정원 공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국정원장 자리에 오른 김만복 전 원장은 지난달 14일 검찰에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건 등과 관련해 조사를 받았다. 그는 2007년 대선 직전 방북해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나눈 대화 내용을 유출했다가 검찰에 소환됐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사례는 더 있다. 김대중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임동원·신건 전 원장은 불법 감청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됐었다. 국정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때에는 권영해 전 부장이 원 전 원장처럼 대선에 개입한 혐의로 사퇴 이후 수차례 기소돼 철창신세를 져야 했다. 장세동 이현우 전 부장 등도 처벌받았다. 정보기관 수장들의 암울한 역사다.

남재준 현 국정원장은 야당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국정원 댓글 사건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파문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정치개입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서 국정원 개혁안을 마련 중이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남 원장이 난관을 뚫고 국정원 체질을 확 바꿀 수 있을까.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