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생태계의 主敵

입력 2013-11-08 17:40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인 늑대는 사슴이나 양 등의 순한 초식동물들을 먹이로 삼는다. 인간들이 보기엔 선한 동물을 해치는 대표적인 악한 동물이었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모든 산과 숲에서 늑대를 없애는 대대적인 사냥이 시작됐다. 집권 시절 많은 땅을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해 환경친화적인 대통령으로 꼽히는 시어도어 루스벨트마저 국민과 자연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늑대를 비롯한 포식동물 제거작업을 진두지휘했다.

뿐만 아니라 퓨마, 코요테, 스라소니 같은 포식동물들을 제거해 순한 초식동물들이 맘껏 풀을 뜯어먹으며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 더 많은 풀과 나무들을 자라게 하기 위해 토양엔 양분이 가득 든 비료를 뿌리고, 작물 돌려 심기나 흙 갈아엎기 등도 마다하지 않았다. 동식물을 포함한 자연 생태계는 인간에 의해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절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는 인간들만의 착각이었음을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등의 공동연구진은 전 세계 생태계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인간이라는 연구결과를 학술지 ‘생태학과 사회’ 최근호에 게재했다. 연구진은 세계 100개국에서 관련 데이터를 수집해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15개의 변수를 선정한 뒤 이를 자연의 건강함을 측정하는 척도인 멸종위기종 및 침략외래종의 변화에 대입했다. 그 결과 생태계의 건강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는 바로 ‘인간의 기대수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인간이 오래 살수록 생태계의 건강은 나빠진다는 의미다.

20세기 초 대규모 사냥으로 늑대가 멸종한 미국 옐로스톤국립공원에서는 1997년에 캐나다산 늑대를 풀어놓았다. 그 후 생태계가 다시 건강해지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늑대는 자기 영역을 아주 과학적으로 관리하는 동물로 유명하다. 초식동물 중 가장 약하고 병들어 보이는 놈만 골라서 잡아먹어 먹잇감들이 건강한 개체를 계속 이어가도록 한다. 또 아무리 젊고 힘 있는 늑대라도 우두머리 외에는 짝짓기를 할 수 없도록 해서 스스로 개체 수를 조절한다.

포유류 중 가장 느리고 게으른 동물인 나무늘보는 1주일에 한 번 나무에서 내려와 땅에 얕은 구덩이를 파고 배설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지상으로 내려와 용변을 보는 까닭은 자신의 생존 도구인 나무의 성장을 돕기 위해서다. 생태계를 건강하게 하는 힘은 바로 생태계 그 자체에서 나온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