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하 칼럼] 막 내린 WCC 부산총회, 남겨준 숙제
입력 2013-11-08 17:24
부산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가 막을 내렸다. 그동안 맘 졸이며 고생해온 한국준비위원회(KHC)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 감사드린다. 크고 작은 잡음이 있었지만 생명을 낳기 위한 산통이었다고 생각한다. ‘설거지 한 사람이 접시도 깬다’는 말도 있잖은가. 유난히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고, 내부의 불협화음도 들렸지만 할 말이 많을 것 같았던 관계자들은 정작 입이 무거웠다. 그들의 진중함이 고맙게 느껴진다.
물론 WCC 총회의 정체성이나 이슈는 세계교회가 함께 해온 일이니 만큼 한국교회가 책임 있게 답변하고 변명할 일은 아니다. 또 귀를 막고 반대주장만 하는 벽창호들을 향해 메아리 없는 응수를 하는 일 역시 인내심이 필요할 뿐이었다. 사실 당사자들은 한국교회를 대신해 커다란 살림을 꾸리느라 얼마나 벅찼을까. 잔치가 파한 후에 가장 허탈해 할 사람은 주관자들이다. 반갑게 맞았던 3000명 가까운 외국 손님들은 하루 이틀 새 썰물처럼 떠났고, 찬양과 기도, 토론과 박수소리로 가득했던 벡스코 행사장은 다시 다음 행사로 교체될 것이다. 세계적인 선교박람회는 당분간 한국무대를 기약하기 어렵다. 돌아보니 참 중요한 행사를 아주 힘들게 치러냈다는 자부심을 지녀도 좋을 것이다.
첫날 개회예배에 참석하면서 대회의 성공이 한눈에 느껴졌다. 우선 110여개 회원국의 95퍼센트 이상이 등록했다니 평소 국내 교단총회 수준에 버금가는 참가율이다. 이들은 아시아는 물론 태평양과 중동 그리고 유럽, 아프리카, 북미, 카리브, 라틴아메리카에서 온 그리스도인들이다. 형형색색의 얼굴들을 보니 주님의 교회가 함께 모인 거룩한 총회라는 믿음이 들었다. 오리엔트정교회 아르메니아교회 대주교의 설교를 들으면서 기독교 역사의 과거와 현재의 대화처럼 느껴져 눈길이 뜨거워졌다. 이들은 에베소공의회와 칼케톤공의회에서 소수파로 취급당하지 않았던가. 대한민국 부산에서 그 후예 교부의 설교를 듣게 된 것은 교회사의 또 다른 현장이었다. 더군다나 그 역시 우리와 같이 현대사회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민을 토로하는 21세기의 인물이었다.
총회에서는 17개 교파별 회의가 열렸다. 우리에게 감리교, 개혁교회, 성공회, 오순절교회는 익숙하지만 사도교회, 형제교회, 모라비안교회, 메노나이트교회, 올드가톨릭교회는 얼마나 낯선가. 총회 회원은 모두 349교회이다. 내가 속한 한국감리교회도 그 중의 하나이니 개신교회로 모이는 주님의 교회의 품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좁은 경험으로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렵다. 이를 한 장소에서 보고 느끼고 경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부산 총회는 의미가 있었다. 우리는 세계교회와 더 많이 친교하고, 더 겸손히 배워야한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처럼 수많은 인종과 나라들, 교회의 뿌리와 교파들이 하나의 고백과 하모니를 이루어 냈다는 사실이다. 같은 하나님께 기도했고, 채택한 문서마다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기원했다. 마당에서 열린 ‘세계의 십자가 전’은 천차만별의 십자가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사랑으로 일치함을 아름답게 선보였다.
WCC의 전통적인 관심사인 정의를 비롯해 가난, 불평등 등 경제문제 그리고 질병과 에이즈, 생태, 성차별, 인권, 한반도 화해와 통일 등 워크숍과 주제회의에서 드러난 수많은 이슈들은 왜 세계 교회가 오늘 그곳에 존재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였다. 그들은 자기 이웃의 가장 가까이에 머물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 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WCC 총회는 새삼 그런 복음의 명령을 확인하고, 우리 시대의 사명을 각성시켰다.
막을 내린 지금부터 한국교회는 이러한 과제들을 어떻게 소화할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세계교회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면 한국교회가 후원한 WCC 총회는 값비싼 이벤트로 끝나고 말 것이다. 1991년 JPIC(정의·평화·창조질서 보전) 서울대회의 소홀했던 마무리를 상기한다면 앞으로 후속작업은 더욱 신중하고 지난해야 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은 행사장 밖에서 들려온 반대의 외침보다 참람하게 경계해야할 내부의 자각이 되어야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부산 총회는 한국교회의 규모와 화려함 밖에 소외된 교회들과 한국교회 다운 민중선교의 모습을 오롯이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것 역시 숙제로 남는다. 허나 ‘국수 잘하는 솜씨, 수제비는 못하랴’는 말처럼 WCC 총회를 잘 치룬 한국교회는 더 낮은 자리에서 잘 섬기는 법을 익혔을 것임에 틀림없다.
<사단법인 겨레사랑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