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영성] 하나님처럼 된 사람
입력 2013-11-08 18:49 수정 2013-11-08 19:10
이집트의 마카리우스는 안토니 다음으로 유명한 수도사였다. 그가 젊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사제로 임명하려 했다. 마카리우스는 이를 피해 어느 마을 근처에서 살았다. 그런데 그 마을에 사는 한 처녀가 유혹에 빠져 임신한 일이 드러났다. 마을 사람들이 누구의 짓이냐고 다그치자 그 처녀는 마카리우스를 가리키며 ‘저 은수자(隱修者)’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분노한 마을 사람들은 그를 붙잡아 끌고 다니면서 모욕을 주고 거의 죽을 정도로 때렸다. 그 처녀의 부모는 자기 딸을 먹여 살리겠다고 약속하지 않는 한 그를 놓아주지 않으려 했다. 마카리우스는 약속을 했고 그를 평소에 존경했던 성도 한 사람이 보증까지 섰다.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그는 수실로 돌아와서 자기 스스로에게 “마카리우스야! 이제 너에게 아내가 생겼다. 가족을 부양하려면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밤낮으로 일해서 그 처녀를 부양했다. 그녀가 드디어 출산하게 되었는데 여러 날 동안 산고를 겪었지만 아기를 낳지 못했다. 사람들이 “어찌 된 일이냐?”라고 물었더니 그 처녀는 “저는 그 이유를 압니다. 제가 그 은수자를 중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이를 갖게 한 것은 그분이 아니라 아무개 청년입니다. 제가 거짓말을 했습니다”라고 고백했고 그러고 나서야 아기를 낳을 수 있었다. 그를 위해 보증을 섰던 사람이 달려와서 이 소식을 전해주었고, 마을 사람 모두가 마카리우스에게 용서를 구하려고 찾아올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이를 듣는 즉시 마카리우스는 그 마을을 떠나 스케티스 사막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이 미담은 한번으로 끝난 사건이 아니라 마카리우스가 평생토록 사막에서 지켰던 실천이며 생활방식이었다. 한번은 그가 외출하고 돌아오자 도둑이 물건들을 훔쳐서 낙타에 싣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마치 지나가는 사람인 듯 도둑이 물건 싣는 것을 도와주었다. 물건을 다 실은 도둑은 낙타를 출발하게 하려고 채찍질을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이를 본 마카리우스는 낙타를 발로 차면서 “일어서거라” 하고 말했다. 낙타는 즉시 일어나 조금 앞으로 갔다. 그러나 다시 주저앉더니 일어나지 못했다. 결국 짐을 완전히 내려놓은 후에야 낙타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마카리우스는 눈앞에서 나쁜 것을 보고 들었을 때 마치 듣지도 보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한번은 그에게 기도를 받으러 온 사람이 그 집을 자주 방문하는 사제가 범죄했으니 더 이상 찾아오지 못하게 하라고 귀띔해 주었다. 그러자 마카리우스는 “사제가 비록 죄인이라 할지라도 주님께서 그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그 사제보다 더 큰 죄인입니다”라고 말하며 남을 판단치 말라고 책망했다.
마카리우스는 늘 제자들에게 아무도 판단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한번은 두 수도사가 범죄했을 때 한 원로가 출교를 결정했다. 마카리우스는 두 수도사를 불러 자초지종을 듣고서 그 판단이 틀렸음을 알았다. 그는 원로를 찾아가서 다음과 같이 권면했다. “형제여,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당신에게 지각이 부족하여 이 일을 처리하면서 마귀들의 노리개가 되지 않았는지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잘못을 회개하십시오.”
이런 삶을 지켜본 수도사들은 마카리우스를 두고 ‘세상의 하나님처럼 되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보호하시듯 그는 자신이 본 허물들을 전혀 보지 못한 것처럼 덮어주었고 자신이 들은 잘못들도 전혀 듣지 못한 것처럼 덮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잠언 19장 11절은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라고 말씀하는데 마카리우스의 삶은 남의 허물을 덮어주면 어떻게 자신에게 영광이 돌아오는가를 보여주는 모델이었다.
마카리우스의 허물을 덮어주는 인격의 향기는 사막의 바람을 타고 흘러갔다. 그의 제자 푀멘은 스승과 같은 향기를 내려고 노력했다. 몇 명의 원로들이 푀멘에게 “죄를 범하는 형제를 보면 책망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푀멘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지금까지 형제가 죄짓는 장소를 우연히 지나가게 되었을 때, 그를 그냥 지나쳐 모른 척하였습니다.” 또 한번은 한 수도사가 푀멘에게 “형제가 잘못하는 것을 보았을 때에 그것을 감추어 주는 것이 옳습니까?”라고 물었다. 푀멘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형제의 허물을 덮어 주는 순간에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허물을 덮어 주시며, 우리가 형제의 허물을 드러내는 순간에 하나님도 우리의 허물을 드러내십니다.”
우리 허물을 덮어주시는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좋아하는 한 가지 이유는 내 허물을 덮어주시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이 좋은 것을 오래도록 누리려면 다음 일화를 우리 마음에 담아야 할 것이다. 마카리우스가 제자들에게 준 명령, “형제들이여, 도망치시오.” 이 말을 들은 한 수도사가 그에게 물었다. “이 사막에서 어디로 더 도망칠 수 있단 말입니까?” 마카리우스는 손가락을 입에 대면서 말했다. “여기, 바로 범죄하는 입술에서 도망치란 말입니다.”
김진하 <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