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선은 무너지지 않는다”…순위 집착한 인권침해, 공식사과·진상조사 요구

입력 2013-11-08 01:30


“한 인간의 성별을 확인하자는 주장은 당사자의 인격과 자존심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심각한 인권 침해다.”

여자 실업축구 서울시청이 최근 불거진 박은선(27·서울시청)의 ‘성별 논란’과 관련해 강력 대응방침을 밝혔다.

김준수 서울시청 단장 겸 서울시체육회 사무처장은 7일 오전 서울 상봉동 서울시체육회 대강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은선은 이미 2004년 위례정보고 3학년 재학시 아테네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돼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성별 판정을 받았다”며 “6개 구단 감독들이 다시 박은선의 성별 진단 결과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박은선을 두 번 죽이자는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하는 기본적인 선수 인권을 저버린 행위”라고 비난했다.

한국여자축구연맹 소속 6개 구단 감독들은 지난달 19일 열린 간담회에서 FA(자유계약선수) 소급 적용 등을 논의하던 중 “박은선의 성별을 진단해야 한다”며 논란을 야기했다. 이들은 박은선이 2013년 12월 31일까지 박은선의 성별 진단을 하지 않으면 내년 리그 출전을 거부하겠다는 의견을 문서화해 여자축구연맹에 제출했다.

김 단장은 이 문서를 회견장에서 공개하며 “6개구단 감독들은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며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김 단장은 “사태가 심각해지자 6개 구단 감독들은 ‘사적인 농담이었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또 명백한 증거 자료가 있는데도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하려 시도했다”고 비난했다.

서정호 서울시청 감독은 “약체였던 우리 팀이 박은선의 활약 덕분에 상위권으로 올라가니까 지난 7, 8월부터 이런 얘기들이 나왔다”며 “박은선이 못 뛰면 자기들 성적이 올라갈 것이라는 개인의 이기주의가 단체의 이기주의로 확산된 경우”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적에 눈이 먼 감독들이 담합해 한국 여자축구를 이끌어 갈 선수를 음해했다는 사실이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박은선이 최근 대표팀에 발탁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아직 정신적인 준비가 돼 있지 않아 한 템포 쉰 뒤에 대표팀에 뽑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청 측은 이번 사태와 관련, 국가인권위원회 등 관련기관에 정식으로 철저한 진상조사를 의뢰할 예정이다. 김 단장은 “진상조사 결과를 보고 미흡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등 적극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 감독은 박은선의 근황에 대해 “극단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걱정이 돼 통화를 계속하고 있다”며 “하지만 예전보다 성숙해졌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곧 팀과 이야기를 나눈 뒤 직접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사태와 관련 이성균 수원시설관리공단 감독이 사퇴하기로 했다. 이 감독은 이날 “파문이 일어난 이상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며 “구단에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 감독은 해당 모임의 간사를 맡아왔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