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deep] 中企도 지키는 기본인데… 국회는 겉핥기 심사 되풀이

입력 2013-11-07 19:03


결산은 찬밥… 예산에만 올인

“경제성장률 전망 확정을 어떤 절차를 거쳐 합니까?”(민주당 유성엽 의원)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저희 소관이 아니라서 답변드릴 위치에 있지 않아서 죄송합니다.”(기획재정부 이태성 재정관리국장)

“차관 어디 갔어요?”(유 의원)

“…”(이 국장)

“이번 공청회 (자료) 요청을 받은 게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 굉장히 실망스럽다. 그 많은 기간에도 어떻게 며칠을 주면서…국민의 알토란같은 세금인데 앞으로 더 내실 있는 결산이 이뤄지도록 소망합니다.”(김상헌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지난달 8일 국회에서 열린 ‘2012년도 결산에 대한 공청회’의 한 장면이다. 국회는 국회법상 의무사안인 이 공청회를 시작으로 결산 심사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올해도 국회의 졸속·늑장 결산심사 관행은 여전하다. 7일 2012년도 결산 안건에 대한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열렸지만 결산과 관련된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여야 의원을 불문하고 군의 대선 개입, 국가보훈처의 안보교육 DVD 제작 등 정쟁에 대한 발언이 주를 이뤘다.

국회법은 전년도 결산을 8월 31일까지 마무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003년 이 규정이 마련된 이후 법정시한을 지킨 적은 2011년 한 번뿐이다.

결산 기한을 지키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국회 심의가 부실하고 문제점이 발견돼도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중소기업조차도 생산·품질 관리를 위해 지키고 있는 ‘PDCA 사이클’이 우리나라 예·결산 시스템에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예산에 해당하는 ‘Plan(계획)과 Do(실천)’는 주목을 받지만, Check(확인)-Action(조치) 절차는 무시되고 있다. 예산이 예측을 제대로 했는지, 집행에 잘못된 점이 있는지를 점검하고 잘못된 부분을 이듬해 예산에 반영해야 하지만 예산과 결산이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산은 정말 요식절차일까. 그렇지 않다. 충남대 정세은 교수는 “정부의 재정 및 조세정책을 평가하면서 주로 예산에 초점을 맞춰 평가하지만 결산은 실제 정책을 실행한 결과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결산 내역을 살펴보면 문제점은 수두룩하다. 지난해 정부의 예산 집행률은 95.3%로 최근 5년간 가장 낮았다. 100조원을 쓰겠다고 국민에게 약속을 했지만 5조원은 쓰지 못한 셈이다. 예산을 편성하고 지난해 다 쓰지 못해 올해로 넘긴 이월액은 7조7577억원으로 사상 최대였다. 이월 대상이 안돼 불용 처리된 금액도 2008년 이후 매년 5조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모두 기회비용 차원에서 정말 써야 할 데 쓰지 못하고 버려지는 예산이다. 일반 가계야 허리띠를 졸라 매 계획보다 덜 쓰면 좋지만 국가 예산은 적재적소에 계획했던 예산을 모두 소진하는 것이 정상이다. 우리 재정의 ‘고질병’인 불용·이월액이 재정의 효율적인 운용을 저해하고 있지만 행정부나 국회나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희박하다.

‘장밋빛 전망’으로 부풀려진 예산을 짜는 관행도 매년 ‘반성 없는’ 결산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2011년 지나치게 낙관적인 경제성장률 전망치 4.5%에 기반해 2012년도 예산을 수립했다. 그 결과는 올해 4월 추가경정예산 편성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국회가 결산 심사를 하면서 부처에 시정요구를 해도 그때뿐이다. 시정요구는 2003년 354건에서 2011년 1236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국회예산정책처 분석 결과 2011년 166건의 시정요구 사항은 2010년과 2011년에 동일하거나 유사하게 시정요구를 받았었다.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정부는 매년 시정요구에 대해 문서상으로 100% 시정이 완료됐다고 보고하고 있지만 실제 예산 수립과정에서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1000건이 넘는 시정요구 중 국회가 작심하고 감사를 요구해 제대로 고쳐보겠다고 나선 것도 10건을 넘은 적이 없다.

이 같은 국회의 부실 심사에 행정부는 겉으로는 볼멘소리를 하지만 속으로는 즐기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매년 4월 결산 결과를 발표하지만 이월·불용액 과다문제, 시정요구 등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대신 국유건물 중 가장 비싼 건물 같은 가십성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며느리가 쓴 가계부를 꼼꼼히 들여다보는 시어머니가 없으니 매년 잘못된 점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매년 결산이 관심 밖에 있으면서 우리 재정의 흐름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은 2007년 975조원에서 지난해 말 1272조원으로 297조원 늘어났다. 반면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의 빚을 합친 국가채무액은 같은 기간 501조원에서 960조원으로 배 가까이 증가했다. 매년 결산에서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들이 쌓이다보니 감당하기 힘들 정도가 된 것이다.

오는 15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국회 결산 심사 기한은 이제 1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쪽지예산을 어떻게 넣을지 고민하는 것의 반만이라도 결산을 들여다본다면, 행정부가 결산 지적사항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국민들의 혈세를 쓰는 우리 재정은 달라질 수 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