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국민참여재판] 유죄+선고유예… 배심원 무죄 평결 의식한 ‘어정쩡 절충’
입력 2013-11-07 17:36 수정 2013-11-07 22:21
전주지법 형사2부(부장판사 은택)는 7일 안도현 시인 사건에 대해 일종의 절충안을 택했다. 배심원단의 전원일치 무죄 평결에 대해 ‘기속력이 없다’며 일부 유죄를 인정했다. 대신 배심원단의 평결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선고를 유예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절충을 ‘제3의 길’이라고 표현했다.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재판부의 판단이 ‘모순’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박근혜 후보 낙선시킬 목적으로 비방=사건의 쟁점은 안 시인이 지난 대선 당시 트위터에 올린 박근혜 후보 비방글 17건이 ‘허위사실공표’와 ‘후보자 비방죄’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안 시인의 트위터 글이 ‘박 후보가 안중근 의사의 유묵 도난에 관여했거나 도난된 유묵을 소장했다’는 사실을 전제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해당 트위터 글들이 ‘진실’은 아니라고 봤다. 의혹을 제기한 안 시인 측에 입증 책임이 있지만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진실’ 여부가 소명되지 않기 때문에 법률적 허위사실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안 시인이 그 사실이 허위임을 알면서 글을 올린 것은 아니기 때문에 허위사실공표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범죄행위임을 알면서 행위를 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하지만 트위터 글이 후보자 비방죄에는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글 내용이 대통령 후보의 능력, 자질과 직접 관련 없는 도덕적 흠집을 내는 것”이라며 “박 후보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비방한 것”이라고 말했다.
◇배심원 평결 기속력 없지만 최대한 존중=재판부의 판단은 안 시인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로 판단한 배심원 평결과는 배치된다. 재판부는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 따른 배심원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민주사회의 시대적 요청에 부합하는 것”이라면서도 “평결이 법관의 직업적 양심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기속력을 가진다”고 밝혔다. 배심원들의 법리적 오류와 정치적·감정적 평결에 따른 유무죄 판단을 법관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한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을 처벌하지 않는다’는 배심원단의 의견을 판결에 반영하기 위해 법원이 내릴 수 있는 최저형인 ‘벌금 100만원의 선고유예’라는 최종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모순적인 판결을 내렸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일반 재판이었다면 유죄로 판단한 이상 선고유예를 할 사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재판부가 무리하게 절충을 하려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판결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후보자 비방죄는 양형기준상 8개월 이하의 징역 혹은 100만∼300만원의 벌금형에 해당한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재판부는 판결문 말미에서 “평결과 판결 중 어떤 것을 우월적 지위에 놓을 것인지, 아니면 쌍방 조화적 지위에 있게 할 것인지에 대해 국민의 다양한 의사를 수렴해 공감대를 형성한 뒤 입법적 결단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