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응답하라 여의도

입력 2013-11-07 18:16


요즘 우리 집 최고 인기 드라마인 ‘응답하라 1994’. 신촌 하숙집 사람들과의 1시간은 그 시절 우리 집안의 문제적 청춘이었던 내가 시대 고증을 빌미로 은근슬쩍 흘려놓는 고해성사의 시간이기도 하다. 갓 상경한 삼천포에게 ‘UR 반대’를 외치며 불온한(?) 유인물을 건네주던 그 학생. 파출소 구석에서 주먹 불끈 쥐고 구호를 외치는 학생들. 그들 모두가 나였다. 식구들이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24살의 나는 1994년, 대학시절의 마지막 해를 그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그리고 2013년. 현실 속의 나는 TV 앞에서 열심히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 식구들에게 우루과이라운드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신발이 없던 원숭이 나라에 신발장수가 찾아왔어. 그는 신발이 필요없는 원숭이들에게 신발을 거저 주듯 뿌려댔지. 얼마 후 원숭이들은 발바닥 굳은살이 사라져서 신발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어. 그러자 그는 돌변해서 신발값을 올려 받았고 원숭이들은 부르는 게 값인 그의 신발을 울며 겨자 먹기로 살 수밖에 없게 되었대.”

우리 농가가 파산하게 되면 결국 우리는 금값을 내고 농약덩어리든 썩은 곡식이든 그들이 주는 대로 먹게 될 것이라는, 한편의 잔혹동화 같은 이야기. 방금 한 말도 까먹는 내가 아직도 이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식량주권이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친김에 1995년 농업협정문 발효 이후 우리 농업 현실에 대한 글들을 읽어봤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동안 신발장수를 이길 만한 경쟁력 있는 신발을 만들지 못한 것 같았다. 결국 관세화 유예기간이 끝나는 내년부터 과연 어찌 될 것인지, 모든 것이 불투명했다.

그리고 엊그제, “농민도 사람이다”라고 절규하는 농민들을 보았다. 이어지는 뉴스는 통합진보당의 삭발식 소식이고 채널을 돌리니 대선개입이니 사초폐기니 여야의 대립 양상이 절정에 달했다고 한다. 농민들의 가슴이 가뭄 든 논바닥마냥 저렇게 타들어가는데 정말이지 너무들 한다 싶다.

쌀은 주권이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국제 협상이 당장 내년 일이다. 피할 수 없다면 무엇을 얼마나 내어주고 무엇을 얼마나 얻을 것인지, 그리고 그 얻은 것으로 어느 논에 어떻게 물을 대줄 것인지, 기왕에 싸울 것이면 이런 일다운 일로 싸워주면 안될까. 다 내어주고 난 뒤에는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리고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