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맹경환] 유럽, 부끄러움을 알아야
입력 2013-11-07 18:10 수정 2013-11-07 22:17
지난달 유럽에서는 ‘서글픈’ 해프닝이 있었다. 그리스 경찰은 마약 단속을 한다며 로마(집시) 캠프촌을 급습했고, 한 로마 부부와 함께 살지만 외모가 전혀 다른 금발머리의 4세 여자 아이를 발견했다. 로마에 대한 차별의 역사는 1000년이 넘는다. 학설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략 8∼10세기 인도 펀자브 지역의 하층민들이 유럽으로 넘어온 것이 로마의 기원이다. 영국인들이 이들을 이집트인(Egyptian)으로 착각해 ‘집시’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로마(Roma)’로 불러왔고 유럽의회도 1995년 이를 공식 승인했다.
마리아라는 이 아이를 키워 왔던 부부는 유괴 혐의로 체포됐다. 불가리아인 부부가 맡기고 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여론은 그들을 유괴범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열흘도 안 돼 반전 결말이 나왔다. 사샤 루세바라는 여성과 남편은 2009년 그리스에서 일하면서 딸을 낳았고 귀국할 때 돈이 없어 두고 왔다. DNA 샘플 분석 결과 이들이 바로 마리아의 친부모였다. 결국 로마 부부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유럽에서는 로마에 대한 비난과 탄압이 광풍처럼 휩쓸었다. 아일랜드와 포르투갈 등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마누엘 발스 프랑스 내무장관은 “로마 주민들을 프랑스 사회에 통합시키자는 얘기는 환상”이라며 “그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존재이며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하지만 발스의 지지율이 70% 안팎인 것을 보면 한 정치인의 돌출 발언이 아니라 프랑스인의 내재된 반감임을 알 수 있다.
로마에 대한 유럽의 뿌리 깊은 인종적 편견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 미네소타주립대 연구에 따르면 이런 저런 차별로 주류 사회에서 벗어나 있던 로마들은 급기야 15세기 초 상당수가 헝가리와 루마니아 귀족의 노예로 전락했다. 박해의 절정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자행됐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치는 당시 로마에 대해서도 인종 청소를 했다. 역사학자들은 당시 유럽 로마의 25%인 22만명가량이 학살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도 1200만명의 로마들이 유럽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형편이 크게 변한 게 없다. 3명 중 1명은 실업 상태고 90%는 빈곤선 이하라고 한다. 특히 어려서부터 차별을 받기 때문에 미래도 기대하기 힘들다. 슬로바키아의 로마 아이들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다. 때로는 장애 아동들을 위해 마련된 특별 학급에서 격리 교육을 받는다. 체코에서도 유럽 인권법정이 로마 아이들을 특별 학급에 편성하는 것이 차별이라고 판정한 지 6년이 지났지만 개선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1년여 전인 지난해 10월 독일 베를린에는 나치 희생 로마들을 위해 추모시설이 마련됐다. 당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오늘날에도 로마들이 여전히 차별과 배제로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의 인권단체들은 추모 시설이 정의를 위한 중요한 진전이라고 반겼다. 하지만 경제위기를 핑계로 계속되는 로마 차별은 더욱 과감하고 조직적이 되고 있다. 서구 민주주의 발상지로 일컬어지는 프랑스에서는 니콜라 사르코지 우파 정권보다 프랑수아 올랑드 좌파 집권 이후 되레 ‘로마 추방 정책’의 강도가 세지고 있다. 유럽은 국제적으로 이슈가 되는 일에 유독 인권을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최소한 로마에 대한 차별에 관한 한 유럽 지도자들이 꼭 들어야 할 말이 있다. ‘Shame on you.’
맹경환 국제부 차장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