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체코, 두 언어와 문화 사이 다름을 통해 타자와 나를 돌아보다
입력 2013-11-07 17:18
러시아·일본 정상회담의 통시통역사이자 유명작가인 요네하라 마리(1950∼2006)의 한정판 특별 선집(전 5권·마음산책)이 발간됐다. 요네하라가 생전에 남긴 16권 전권의 국내 번역을 기념해 그 가운데 다섯 권을 골라 묶은 1000질 한정판이다. 선집은 ‘프라하의 소녀시대’ ‘미식견문록’ ‘발명 마니아’ ‘교양 노트’ ‘언어 감각 기르기’ 등 6권으로 구성돼 있다.
‘프라하의 소녀시대’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는 아홉 살부터 열네 살까지 소녀 시절을 체코슬로비키아의 프라하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나는 모든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에 다녔다.”
요네하라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명제는 바로 이 두 문장이다. 일본과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두 문화의 경계에서 언어와 문화를 번역하는 작업은 결국 그녀의 인생행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1959년 아버지를 따라 프라하의 소비에트학교를 다녔다. 아버지가 제3인터내셔널격인 국제공산당 이론정보지 ‘평화와 사회주의 제문제’의 일본 공산당 대표로 선발되어 편집위원으로 부임해 가는데 가족 모두가 따라간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알아주는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사회 모순을 느껴 자신의 부귀안일을 모두 버리고 혁명에 투신한다. 가족이 고생할 것을 알면서도 쉽지 않은 길을 택했고, 평생 청렴하게 살아간 아버지를 그는 누구보다 존경했다. 그런 아버지와 함께 프라하에서 20세기 동서냉전의 한 복판을 통과했다는 사실이야말로 그에게 주어진 특별한 체험이었다.
1964년 중학교 2학년 때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또 다시 문화적 충격을 겪어야 했다. 이후 도쿄외국어대와 도쿄대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한 그는 1980년 러시아어통역협회 설립 멤버로 참여해 초대사무국장을 지냈으며 1990년엔 일본을 방문한 옐친 러시아대통령을 수행하며 동시통역을 하기도 했다. 그의 글들은 다름에 대한 체험을 소개하는 데 머물지 않고, 다름을 통해 타자와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면서 다름이란 결국 같음의 또 다른 양태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