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현대·기아차 勞使가 상생하는 길

입력 2013-11-07 17:48


“투쟁 일삼는 강성 노조 퇴출시키고 사측은 연구개발과 경영혁신에 매진해야”

남극 세종과학기지를 취재하고 돌아오던 1999년 2월 중순의 일이었다. 칠레 최남단 도시 푼타아레나스 공군기지에서 승합차를 타고 시내 호텔로 향했다. 무심히 차창 밖을 내다보던 일행 중 한 명이 들뜬 소리로 외쳤다.

“포니다, 포니!” 실없는 소리를 하는 줄 알았다. 1974년 현대가 국내 최초 고유모델로 개발한 포니는 이미 한국에서 자취를 감추지 않았는가. 국내에서 오래 전에 단종된 포니가 외국에서 굴러갈 리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승합차 운전자가 앞서 달리는 소형차를 따라잡았다. 포니가 맞았다. 한국에서 남쪽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포니가 주는 감동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컸다. 포니 운전자에게 갓길에 차를 세우라고 수신호를 보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차를 세웠다.

한국인이라는 말을 듣고 포니 운전자는 활짝 웃었다. “포니, 넘버 원.” 엄지손가락까지 치켜세웠다. 포니를 배경으로 운전자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외국에서 우리 기업 광고판만 봐도 가슴이 뭉클하던 시절에 맞닥뜨린 포니는 오랜 여행으로 쌓인 피로를 한 방에 날려 보냈다.

한·일월드컵이 끝나고 스웨덴을 방문했을 때였다. 프랑스 독일 스웨덴의 친환경 에너지 실태를 둘러보기 위한 여정이었다. 스웨덴에서 만난 여행 안내원이 들려준 일화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스웨덴에서 현대차를 판매하는 딜러가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면 현대차의 대형 승용차를 선착순으로 거저 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정확히 몇 대인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많았던 것은 분명하다. 16강 진출도 장담하기 어려운 마당에 우승이라니. 당연히 스웨덴 국민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월드컵 경기가 진행되면서 스웨덴 국민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국이 16강, 8강을 넘어 준결승전에 진출한 것이다. 막강 전력을 자랑하는 우승 후보를 차례로 제치고 독일과 결승행을 다투게 됐다. 스웨덴 국민이 조직적으로 응원전에 나섰다. 결국 독일에 석패했지만 스웨덴에서 현대차 광고효과는 엄청났다고 한다.

현대·기아차 그룹의 국내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부동의 1위다. 세계 굴지의 기업과 경쟁하며 해외에서도 약진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연속 생산대수에서 세계 4위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5·5·8위, 영업이익은 2·2·5위로 위축되고 있는 추세다. 엔저를 호재로 삼은 일본 도요타와 경쟁력을 회복한 유럽 업체들이 선방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 노사는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뼈를 깎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생산라인 인력운영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편성효율의 경우 현대차 국외 공장은 90.0∼93.1%인 반면 국내 공장은 57.7%에 불과하다.

자동차 1대를 생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미국 공장이 14.4시간인 데 비해 국내 공장은 28.4시간에 달한다. 국내 공장의 생산효율성은 미국 공장의 절반에 불과하다. 국내에서는 걸핏하면 파업, 잔업·특근 거부에 나선다. 고비용·저효율 구조에 진저리가 난 경영진은 해외로 눈을 돌린다. 자칫 국내 공장의 공동화 현상까지 우려된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강성 후보들이 전원 탈락했다. ‘중도 실리’를 표방한 이경훈 전 위원장이 45.42%, ‘중도 합리’ 노선의 하부영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이 19.25%를 얻어 1·2위를 차지했다. 이들은 8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차제에 투쟁을 일삼는 강성 후보들이 설 땅을 잃도록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

현대·기아차 노조원들은 고액 연봉만 좇지 말고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임금은 다소 줄더라도 일자리를 나누고 여가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본인과 가족에게도 좋은 일 아닐까. 사측은 노조의 불법행동을 엄단하고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확고히 하면서 연구개발과 경영혁신에 매진해야 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