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삭발

입력 2013-11-07 17:47

올해 프로야구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기아는 시즌 초반 연승을 달리며 순항하다 6월 들어 갑자기 3연패를 당했다. 선수들은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뜻에서 단체삭발을 감행해 롯데전에서 당당히 승리했다. 개막전 이후 9연패에 시달리던 한화와 7연패의 늪에 빠진 NC도 삭발투혼을 발휘했지만 한화는 이후에도 계속 졌고, NC는 직후 소중한 1승을 챙겼다.

운동선수뿐 아니라 큰 잘못을 저지른 연예인도 속죄의 의미로 삭발을 한 적이 있다. 인기 아이돌 그룹 블락비는 지난해 초 태국의 인터넷 매체와 인터뷰 도중 현지 홍수 피해와 관련해 불성실한 답변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자 멤버 전원이 사과문을 올린 뒤 리더가 삭발했다. 이후에도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긴 했지만 어쨌든 삭발로 사태가 일단락됐다.

삭발투혼의 하이라이트는 삼성의 이승엽 선수. 그는 지난해 2경기에서 6개의 삼진을 당한 뒤 홀로 삭발을 감행했다. 성적이 별로 나쁘지도 않았지만 2005년 일본 지바 롯데 시절 이후 7년 만에 머리를 짧게 깎았던 것. 그는 “나 자신을 납득하기 힘들었다. 자신한테 너무 관대했다는 생각을 했다”며 삭발 이유를 밝혔다. 공교롭게도 그는 삭발 이후 치른 3경기에서 2홈런을 기록했다.

우리 민족에게 삭발은 사실 금기시되는 행동이다. 일제가 상투를 튼 우리 민족에게 단발령을 내리자 선비들이 적극적으로 저항한 것에서 유래된 듯하다. 효의 시작은 부모가 주신 내 몸을 아끼는 것인데 어찌 감히 몸을 훼손할 수 있느냐는 ‘효경’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삭발을 비롯해 문신이 아무리 유행해도 아직까지 아름답지 못한 인상을 주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결국 삭발이란 과거를 되돌아보며 절대 자만에 빠지지 말고, 그동안의 교만을 반성한다는 의미가 짙은 것 아닐까. 프로 선수들의 삭발도 반드시 다음 경기에 이기자는 뜻보다는 팀을 위해 희생하며 스스로 잘못된 점이 없었는지 반성하는 뜻이 많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악습에서 탈피해 다시 출발하는 신호탄일 수 있다.

정부의 정당해산 청구에 반발한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삭발단식을 벌이고 있다. 의원 수로만 따지면 원내 제3의 정당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어겼다는 이유로 해체 위기에 몰려 있다. 그들의 원통하고 분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번 기회에 왜 통진당이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한번 되돌아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