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솔로몬 못잖은 너구리 판사의 지혜… 법이란 이런 거구나!

입력 2013-11-07 17:18


너구리 판사 퐁퐁이/ 글 김대현 신지영·그림 이경석/창비

배추 농사를 짓는 황소와 족제비. 열심히 밭을 돌본 황소네 배추는 통통하고, 설렁설렁 일한 족제비의 배추는 볼품없다. 농산물 시장에선 족제비의 배추를 아예 받아 주지도 않는다. 이에 잔뜩 화가 난 족제비는 시장을 나오다 싱싱한 배추를 가득 실은 황소네 경운기를 본다. 경사가 조금 가파른 곳에 경운기를 세운 황소는 미끄러지지 말라고 나뭇조각을 괴어놓았다. 짜증이 난 족제비는 경운기 뒷바퀴를 발로 뻥 찼다. 그 순간 나뭇조각이 튕겨 나가고 경운기는 미끄러져 내려가다 뒤집혀 배추가 다 망가졌다. 족제비는 벌을 받을까?

너구리 판사 퐁퐁이는 “경운기가 미끄러진 것은 황소가 브레이크를 제대로 걸어놓지 않았기 때문이므로 족제비는 책임이 없다”고 판결한다. 퐁퐁이 판사는 “어떤 결과에 대한 원인을 판단하기 위해선 결과에 가장 직접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한 원인을 찾아야한다”라고 판결 이유를 밝힌다.

책에는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는 이 에피소드를 비롯해 ‘잘못된 생각, 좋은 결과’ ‘불가능한 행동을 요구할 수 있을까?’ ‘잘못된 행동을 그만두는 방법’ ‘악법도 법일까?’ 등 퐁퐁이 판사의 사건 파일 5개가 소개돼 있다. 책을 펴낸 창비의 ‘사회와 친해지는 책 시리즈’의 법 편으로, 모두 대법원 판례를 재구성한 것이다. 다소 딱딱할 수 있는 소재지만 동물 캐릭터를 등장시켜 아이들의 흥미와 눈높이에 맞춰 사건을 풀어내고 있다.

퐁퐁이 판사는 원고와 피고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본 다음 법 원리에 따라 판결을 내리고, 그러한 판결을 내린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또 각 이야기 말미에 ‘뒷이야기’라는 코너를 두어 도덕과 윤리의 문제까지 짚어 준다.

상황 분석, 주장 및 근거 제시, 사건의 해결로 이어지는 구성은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논리적인 사고를 훈련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재판과정은 만화로 그려 다소 지루해질 수 있는 이야기에 재미를 준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