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가속화되는 박근혜식 법치주의
입력 2013-11-07 05:00
‘박근혜식(式) 법치주의’가 정부 출범 1년차에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특히 김기춘(사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8월 임명된 이후 더욱 속도를 내는 모습이어서 사안마다 김 실장의 ‘작품’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정도다. ‘신공안정국’ 논란까지 불붙고 있지만 정권이 가장 힘 있을 시기에 법을 명분으로 하는 ‘마이 웨이’는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대선 때 후보로 박근혜 대통령과 경쟁했던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6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의혹과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두했다. 대선이 끝난 지 1년도 안 된 시점이라 논란도 예상했을 법하지만 필요하다면 누구라도 예외 없이 법의 잣대로 조사하겠다는 강한 메시지인 셈이다.
또 정부는 전날 통합진보당을 ‘위헌 정당’으로 규정하고 헌정 사상 처음으로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 심판을 청구했다. 서유럽을 순방중인 박 대통령은 즉각 결재했다. 앞서 8월에는 국가정보원이 통진당 소속 이석기 의원에 대해 33년 만에 등장한 내란음모혐의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현 정권이 종북으로 판단한 실체에 대해선 법의 힘으로 발본색원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사안들이다.
과거 정권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끌어온 문제들도 신속하게 처리되고 있다. ‘김우중 추징법’의 국무회의 통과로 추징금 사상 최대 금액인 17조9000억원이 환수될 가능성이 열렸고, 기업인이 경영에 실패하면 주변 사람들의 재산까지 강제로 환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한국전력공사와 주민들이 8년째 갈등을 빚었던 밀양에는 대규모 공권력이 투입됐고, 송전탑 건설이 재개됐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김 실장은 전면에 서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통령이 부재중인 상황에서 민감한 사안들이 처리되고 있는 현실은 이를 상징하는 대목이라는 평가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큰 틀에서 원칙적인 입장을 밝히면 법무부, 검찰, 국정원 등이 집행에 나서는 방식이다. 박 대통령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법질서 회복’을 수차례 강조했을 뿐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현안과 거리를 둔다고 해도 ‘사회적 타협이 부족한 상태에서 법대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시선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여권 내부에서도 이 같은 우려가 감지된다. 어느 하나라도 현 정권이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결과가 나온다면 심각한 역풍을 맞을 수 있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사회 내부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박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경제활성화 등 국정운영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