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눈으로 보고 몸으로 듣죠… 16세 댄서의 열정 “장애는 없다”

입력 2013-11-06 18:07 수정 2013-11-06 22:39


“원, 투, 쓰리, 포,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

여성 파트너가 크게 입을 벌려가며 숫자를 세자 그 입 모양을 바라보고 있던 김주원(16)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대 중앙으로 나갔다. 음악이 시작됐고 김군의 표정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노래는 비를 타고(Singing in the rain)’란 곡에 맞춰 그의 긴 팔과 다리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아마추어 댄스스포츠 선수인 김군은 귀 대신 온몸으로 음악을 듣고 춤을 춘다. 2급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그에게 음악은 ‘쿵쿵’ 하는 둔탁한 음의 연속일 뿐이다. 하지만 김군은 몸에 느껴지는 진동으로 박자를 맞춘다.

6일 오후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에서 열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창립 65주년 기념 나눔 음악회 무대에 김군이 섰다. 공연에 앞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며 그는 “여러 대회에 참가했지만 가장 떨리는 것 같다”고 수줍게 웃었다. 리허설이 끝난 뒤에도 입으로 “두, 두, 둥” 박자를 곱씹었다.

경기도 남양주 진접고 1학년인 김군은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가 있었다. 단 한번도 사랑하는 가족의 목소리를 또렷이 들어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왼쪽 귀에 인공 달팽이관을 삽입하는 ‘와우 수술’을 받았고 오른쪽 귀는 청력이 조금 남아 있어 보청기를 착용한다. 하지만 수술한 왼쪽 귀는 고음을 읽어낼 뿐이고, 춤추는 동안 보청기는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진다. 비장애인은 깜짝 놀랄 천둥소리를 미세하게 듣는 정도다.

귀의 보청기와 다소 어눌한 말투를 빼면 여느 사춘기 소년과 다르지 않았다. 이마에는 여드름이 빨갛게 돋았고, 여자친구가 있냐는 질문에 “엄마가 알면 안 된다”며 수줍게 웃는다. 댄스스포츠 얘기를 꺼내자 표정이 이내 진지해졌다. 잘 알아듣지 못한 질문에는 사회복지사를 통해 재차 확인한 뒤 진중하게 답했다.

2009년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댄스스포츠를 시작한 김군은 단 하루도 연습을 쉬어본 일이 없다. 현재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도움으로 서울 강남의 전문학원에서 배우고 있다. 남양주 집에서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2시간 걸려 학원에 가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김군은 “주 종목인 ‘라틴’은 리듬이 빨라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체력 소모가 심하다”면서도 “숨이 차도 춤출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꿈을 접으려던 순간도 있었다. 대회 참가비와 고가의 무대 의상을 마련하느라 고생하는 부모님이 늘 눈에 밟혔다. 김군은 그때를 떠올리면 춤출 수 있는 현재가 ‘기적’과 같다고 했다. 재단의 도움으로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올해는 비장애인 친구들과 겨뤄 전국 대회에서 세 차례 수상했다.

귀는 들리지 않지만 온몸이 그의 귀가 돼 준다. 김군은 “조금 불편하긴 해도 동작을 눈으로 보고 익히면 박자와 리듬을 읽어낼 수 있다”며 “연습을 남보다 더 많이 하면 음악을 ‘보면서’ 몸으로 느끼며 춤출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같은 장애를 앓고 있는 또래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라면서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