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고문·굶주림에 “치아 망가져 웁니다”… ‘齒 떨리는’ 탈북자들

입력 2013-11-07 05:02


2009년 탈북한 A씨(48·여)는 입국 당시 치아가 윗니 2개, 아랫니 2개뿐이었다. 음식도 제대로 씹지 못했고 그나마 남은 치아도 조금씩 흔들렸다. A씨의 치아가 이렇게 망가진 건 고문 탓이다. 일찍 남편과 사별한 그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2차례 탈북을 시도하다 실패했다. 국경경비대에 붙잡힐 때마다 모진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 시래기에 소금 탄 물죽으로 하루하루 버텨야 했다. 치약은 구할 수도 없을 뿐더러 먹을 것조차 없었기에 양치질은 사치였다. 충치로 이가 썩어가도 참고 견뎠다.

세 번째 탈북에 성공해 한국 땅을 밟은 A씨는 탈북자 정착을 돕는 ‘하나원’에서 평생 처음 치과 치료를 받았다. 스케일링도 하고 틀니도 맞췄다.



탈북자들은 통상 굶주림과 고문에 시달리다 한국에 온다.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치아 상태가 악화된 경우가 많다. 의료비 면제 혜택이 주어지지만 신경치료 등 일부만 해당돼 한국에 와서도 여전히 치아 때문에 고통 받는다.



A씨도 하나원에서 나와 식당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2년 전부터 턱과 틀니가 잘 맞지 않는 걸 느꼈다. 음식을 씹을 때마다 턱이 아팠고 두통과 현기증이 생겼다. 인공치아를 심어야 하지만 140만원 월급으로는 무리다.

B군(19)의 처지도 비슷하다. 1997년 북한당국이 배급을 줄였을 때 군인이던 아버지가 아사(餓死)했다. 친척들도 국가안전보위부에 끌려갔다. 혼자 남은 B군은 여기저기 떠돌다 11세 때부터 ‘꽃제비’가 됐다. 장마당 한켠의 쓰레기장에서 상한 떡 등을 주워 먹는 게 하루 식사였다.



견디다 못해 5차례나 탈북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중국에서 붙잡혀 북송됐다. 수용소에서 몽둥이찜질을 당하며 굶는 날이 반복됐다. 2009년 6번째 시도 만에 한국에 들어올 당시 B군의 키는 110㎝에 불과했다. 영양 상태가 나쁘다 보니 치아도 엉망이다. 교정을 받으려 했지만 ‘알바’ 월급으론 턱없이 부족했다.



이들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서울 강남경찰서는 최근 관내 새터민 50여명을 위해 역삼동 영철이치과와 ‘새터민 치아관리 협약’을 맺었다. 무료로 스케일링이나 인공치아 시술을 해주기 위해서다. 영철이치과 김영철(55) 원장은 6일 “새터민의 치아만 고쳐주기보다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마음까지 보듬는 치료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남경찰서 측은 “이번 협약이 새터민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