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도 뛰었는데… 왜 박은선에 돌 던지나

입력 2013-11-07 05:04

여자 축구계가 난데없이 박은선(27·서울시청)의 ‘성별 논란’으로 발칵 뒤집혔다. 워낙 실력이 출중하고 남자처럼 파워 넘치는 플레이를 하다 보니 ‘성별을 검사해봐야 한다’는 게 의심하는 쪽의 주장이다. 어릴 때부터 성별 의심을 받아온 박은선은 “어린 나이에 수치심을 느꼈는데 지금은 말할 수도 없다. 우리가족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여자축구리그 소속 6개 구단 감독들은 최근 간담회를 열었다. FA(자유계약선수) 소급 적용 등을 논의하다 ‘박은선의 성별을 진단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박은선은 키 1븖80, 몸무게 76㎏에 달하는 당당한 체구 때문에 예전부터 성별 논란에 휩싸여 왔다.

회의에는 개인사정을 이유로 불참한 서정호 서울시청 감독 외에 6개 구단 감독들이 모였고, 이 같은 사안이 결의돼 공문을 통해 여자축구연맹에 전달됐다. 이 안건은 6일 단장 간담회를 통해 공론화될 예정이었으나 돌연 연기됐다.

연맹 관계자는 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일부 감독들이 간담회에서 ‘박은선을 계속 경기에 뛰게 하면 내년 리그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리그 보이콧을 결의한 건 아니다”며 “연맹은 박은선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박은선의 성별 논란이 제기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적잖은 파문이 일고 있다.

박은선은 어린 시절부터 대형 스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03년 미국월드컵, 2004년 아테네올림픽 등에서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2004년 U-20 아시아여자선수권대회에선 득점왕(8골)에 오르며 한국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박은선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고교(현 동산정보산업고)에서 2005년 실업으로 직행했다. 그러나 연맹은 ‘고교졸업자는 대학에 입학해 2년간 뛰어야 한다’는 선수선발 세칙 위반을 이유로 ‘3개 대회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 박은선은 2005년 한 해를 고스란히 날렸다. 이후 부상과 대표팀 무단이탈, 개인사 등으로 한동안 축구계를 떠나 있었다.

박은선은 2010년 2월 아버지가 골수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축구를 그만두려고 팀을 이탈했다. 그러나 가족의 생계 때문에 2011년 11월 말 복귀했다. 박은선은 올 시즌엔 이탈없이 꾸준히 뛰어 정규리그 득점왕(19골)에 오르고, 서울시청을 처음으로 정규리그 2위에 올려놨다. 또 챔피언결정전 준우승도 이끌었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다른 팀 감독들이 지난해까지 박은선에 대해 말이 없다가 올해 갑자기 이러는 것은 자신들의 팀 성적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은선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월드컵 때도, 올림픽 때도 성별 검사를 받고 경기에 출전했는데 그때도 어린 나이에 수치심을 느꼈다”며 “예전 같으면 욕하고 ‘안 하면 돼’라고 했겠지만 어떻게 만든 나 자신인데, 더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적었다. 그는 이어 “저를 데려가려고 잘해 주던 감독님들이 이렇게 죽이려고 드는 게 더 마음 아프다”며 참담한 심정을 밝혔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