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중 목사의 시편] 시의적절한 균형감각
입력 2013-11-06 17:03
최근 한 주요 일간지가 한국인들의 ‘타자(他者)의식 문화’를 지적했다. 이것은 ‘남들의 시선에 대한 궁금증’, 즉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타인의 눈을 통해 확인하려는 경향을 뜻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미국 LA다저스 류현진 선수의 경기가 끝나면 우리나라의 네티즌들은 자체 평가보다 현지 또는 해외 반응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중국, 일본, 한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 현상에 대해 한 대학교수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구 국가들을 따라잡으며 성장하다 보니 서구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내면화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이 언론은 이것을 한국인들의 과도한 ‘극단적 집단주의’ 현상과도 연결시켰다. 예를 들면 해외동포들이 흉악범죄를 저지르면 해당 지역 한인사회 전체가 ‘집단적 눈치 보기’를 시작하고, 때때로 한국 정부까지 나서서 죄책감을 표출한다. 그리고 혈연 등의 공통분모가 발견되기만 하면, 모두 ‘우리’라는 개념 아래 묶어놓고 ‘집단적 동일시’ 현상을 일으킨다.
이러한 비판에는 분명히 일리가 있다.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여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세우려는 태도는 결코 건강하지 않다. 그리고 개인과 집단을 구분하지 못하고 특정 개인들의 삶에 집단 전체가 매몰되는 현상도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러한 비판에는 다분히 일방적인 면이 있다. 한국인들의 ‘타자의식 문화’ 그리고 ‘극단적 집단주의’에는 부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면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민감한 반응습관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세계시장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순발력을 길러주었고, 특히 본격적인 SNS 시대가 열리며 소비자들의 요구와 비판을 전향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길러주었다.
또한 한국인 특유의 집단주의는 ‘서울시청 광장 월드컵응원전’ 같은 진기한 장면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해외동포들이 가지는 집단적 죄책감은 매우 높은 수준의 집단 도덕성, 즉 윤리적 연대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히려 최근 우리 사회의 집단 도덕성이 희박해지면서 백주대낮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잔인한 폭력사건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논란은 사실상 우리의 신앙생활과도 직결된다. 우리가 주변의 눈치를 너무 안 보면 ‘무례한 기독교인’이 되고, 주변의 눈치를 너무 살피면 ‘세속적인 기독교인’이 된다. 우리가 한국교회 전체에 대한 연대감을 버리면 개교회주의에 빠지게 되고, 지나치게 연대감을 강조하다 보면 교회들이 불순한 정치판이 되고 만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의적절한 균형감각을 견지하는 지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옛말처럼 무엇에든 균형감각을 지키지 못하고 적정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긍정적인 결과보다 부정적인 역풍이 거센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언행이 항상 시의적절한 균형감각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자. “경우에 알맞은 말은 은쟁반에 담긴 금 사과이다.”(잠 25:11·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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