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수진 (7) 산호초에 좌초 침몰 위기… 기도·찬송에 배가 쏙∼

입력 2013-11-06 17:03


우리는 팔라우공화국으로 다시 향하면서 기대에 부풀었다. 팔라우는 네 번째 방문이었고 한나2호로는 첫 사역이었기 때문에 감사와 자부심이 넘쳤다. 언제나 그랬듯 우리는 팔라우 정부의 후원과 협조를 받았고 원주민 100명과 한나호 선교사 60명은 팔라우 남서쪽의 5개 섬 순회 사역에 나섰다.

2001년 10월 17일 우리는 주민 3명이 살고 있는 메릴이란 섬을 방문해 그들에게 생필품과 의약품을 전달했다. 그러던 오후 6시쯤 갑자기 한나호가 산호에 좌초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선체 바닥은 산호에 올라와 있었고 배는 조금씩 기울어졌다.

배 뒷부분에 있던 원주민 중 몇 명은 바다에 빠지며 아우성이 선내에 요동쳤고 타이타닉호의 최후의 순간이 뇌리를 스쳤다. 선교(배)에 올라보니 선장과 항해사가 다급히 외쳤고 배는 좌현 엔진을 사용해 후진하려 했지만 프로펠러가 깨지는 굉음과 함께 기관이 정지됐다. 배는 더욱 기울어지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우현 엔진을 사용해 배를 후진시켜보는 것이었다. 만약 우현쪽 프로펠러가 산호에 부딪치면 선장은 퇴선 명령을 내릴 것이다. 굳은 표정의 아내는 두 아이를 데리고 캐빈 안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긴 옷과 구명 재킷을 입히면서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예수님 믿지? 만일 배가 더 기울어져 퇴선명령이 떨어지면 물에 뛰어들어가라. 그리고 될 수 있으면 힘껏 헤엄을 쳐서 배에서 멀리 벗어나라. 만약 우리가 못 만나면 천국에서 보자.”

아내는 아들을 부둥켜안고 울면서 기도했다. 선내의 모든 형제들은 이렇게 구명 재킷을 입고 혹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을 준비하며 두려움 속에서 기도했다. 그러는 사이 갑자기 배가 움직였다. 항해 당직자가 외쳤다. “2노트로 후진하고 있습니다. 이제 3노트입니다!” 어느 누구도 감히 말할 수 없었다. 혹시 측면 바람이라도 불면 한나호는 다시 산호초에 올라갈 수 있었다. 한나호는 계속 낮은 속력으로 후진을 계속했고 마침내 산호초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한나호는 최고의 여객선에나 장착되는 두 대의 엔진과 두 대의 프로펠러가 있는 선박이었다. 그 사실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불안함과 긴장 속에 한 대의 프로펠러로 나머지 3개 섬을 순방했고 선교 사역을 마치고 본토로 돌아왔다.

당시 프로펠러 고장으로 주 엔진도 수리를 해야 했다. 한나호가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프로펠러 수리는 가능한지 그리고 수리비용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선장과 기관장이 없는 배라는 것은 상상도 못할 절망에 빠지게 했다. 이들은 사고 책임을 지고 그만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바로 이 순간을 기다렸다. 당시 팔라우에는 대우건설이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중이었는데 수천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었다. 베트남 노동자 180명 중 20명이 예수를 영접하게 됐고 우린 의료팀을 보내 또 다른 국적의 노동자들을 만났다. 5개월을 전도해 인도네시아인 필리핀인 방글라데시인 인도인 조선족 중국인 등 600여명이 예수를 믿었다.

많은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기적이 이어졌지만 나는 한나호를 보면서 ‘주님, 왜 그때 저를 살려주셨나요. 배가 가라앉았다면 모두들 천국에 가거나 고향으로 돌아갔을 텐데요’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2002년 신년 1주일은 신약성경 독파를 목표로 배에서 보냈다. 상륙 금지와 외부인 출입도 통제했다. 아침마다 선장과 기관장을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기도가 변해 있었다. “주님, 나를 고쳐주세요.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요.” 프로펠러 고장으로 이름만 선교사로 남은 내 모습을 보게 했다. 한나호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님은 회개의 영을 부어 주셨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