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정철훈] 박경리 문학이 남긴 것

입력 2013-11-06 17:32


지난달 25일 낮 12시.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19층 창가에 붙어 자주 밖을 내다본 것은 그날의 주인공이 1시간째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미국 소설가 메릴린 로빈슨(70). 올해로 3회째인 박경리문학상 수상자였다. 예정대로라면 24일 밤 도착했어야 했다. 하지만 항공기가 15시간이나 연착되는 바람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긴 기다림 끝에 회견은 시작되었고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동안 좀 의아스러운 점이 있었다.

-한국은 첫 방문입니까. “예, 첫 방문입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에 온 것도 처음입니다.”

-상을 수상하기 전, 박경리 선생에 대해서 알고 있었나요. “아닙니다. 전에는 전혀 몰랐어요.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과 함께 주최 측에서 자료를 보내준 다음에야 박경리라는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지요.”

이 짧은 문답을 뒤로 하고 과연 박경리 문학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박경리문학상이 제정된 2011년 첫 수상자는 ‘광장’의 작가 최인훈이었다. 이후 박경리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이 상을 국제문학상으로 확대시키기로 결정했고 그 결과 2012년 제2회 수상자로 러시아 소설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70)가 선정됐다. 울리츠카야는 40세 때 중편 ‘소네치카’로 러시아 문단의 주목을 받은 뒤 ‘러시아 대작(大作)상’과 프랑스의 ‘메디치상’ 등 유럽의 주요 문학상을 휩쓸며 이미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였다. 울리츠카야는 당시 수상 소감에서 “내 작품들과 한국이 낳은 위대한 작가 박경리 사이에 유전적 유대관계가 있음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그가 박경리 문학을 어느 정도 정독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올 수상자인 메릴린 로빈슨 역시 “박경리 선생은 한국인의 삶과 한국사가 지닌 독자성을 통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오묘한 아름다움을 보여줬다”는 소감을 남기긴 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가 박경리 문학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는 검증된 바 없다. 알다시피 박경리 문학의 정수인 대하소설 ‘토지’는 현재 영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등 4개 국어로 번역되어 있지만 등장인물이 700여 명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이기에 완역이 아니라 일부 번역 혹은 요약본 번역이다.

여기서 짚어보자. 메릴린 로빈슨과 함께 제3회 박경리문학상 최종 후보에 오른 작가는 미국 작가인 코맥 매카시(80), 필립 로스(80), 돈 데릴로(77), 캐나다의 마거릿 애트우드(74) 등 4명이었다. 이들은 이미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을 수상한 거장일 뿐 아니라, 북미대륙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이들 역시 박경리 문학에 대해 그리 잘 알고 있지 못할 것이라는 개연성이다.

해외작가를 대상으로 박경리문학상을 확대한 발상은 신선하지만 수상자의 문학적 성취가 기왕이면 박경리 문학의 아우라와 동일시될 때 수상자에겐 더 없는 자부심이 될 것이다. 그래서 말이지만, 박경리 문학 자체를 먼저 세계에 알리는 일이 시급한 게 아닐까. 지난해 러시아 작가에 이어 올해 북미 작가로 이어지는 이른바 문화 선진국 작가에 대한 수상소식은 이들이 이미 무언가를 성취한 작가라는 점에서 동어반복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 그보다는 박경리 문학이 남긴 것, 다시 말해 길고 지난한 것을 통한 인간성과 역사의 회복을 상기한다면 앞으로는 제3세계 국가라 할 네팔이나 베트남, 아랍 쪽 작가들에게 눈을 돌리는 게 박경리 문학의 본질에 더 접근된 발상이지 싶다. 1, 2회 당시 1억5000만원이었던 상금이 3회 때인 올해 1억원으로 줄긴 했어도 이 정도의 상금이면 제3세계 작가들에겐 10년 동안 생계 걱정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액수다. 박경리는 생전에 위대한 작가였다. 사후에 더 위대하게 만들어지는 건 아무래도 박경리답지 않다. 박경리 문학은 낮은 곳으로 흘러들수록 더 높아진다. 그 반대의 흐름이라면 자칫 모독이 될까 두렵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