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김찬규] 日 집단적 자위권과 한·미 관계

입력 2013-11-06 17:31

“집단적 자위권 원용해 일본 군사력을 한국에 끌어들이는 것은 국제법상 용인안돼”

지난달 23∼26일 워싱턴을 방문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앞으로 개정될 미·일 방위협력지침 중 한반도 주권행사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한국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미국 측이 이에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여기서 ‘앞으로 개정될 미·일 방위협력지침’이라 함은 지금 일본에서 논쟁중인 집단적 자위권 문제가 긍정적 방향으로 종결돼 그것이 반영된 새로이 작성될 양국간 방위협력지침을 말하는 것이다. 현 국제법상 자위권에는 개별적인 것과 집단적인 것이 있다. 전자는 무력공격을 받은 국가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직접 발동할 수 있는 반격의 권리이고 후자는 동맹국에 대한 무력공격을 자국에 대한 것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해 반격에 나설 수 있는 권리이다. 유엔 헌장 제51조는 이 양자를 국가의 ‘고유한 권리’라고 규정한다.

일본은 지금까지 개별적 자위권은 행사하되 집단적 자위권은 행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후자도 국가의 ‘고유한 권리’이기에 포기할 수는 없지만, 행사하게 되면 자칫 타국의 무력충돌에 말려들 가능성이 있어 그들이 지향하는 평화헌법에 저촉될 우려가 있다는 게 변이었다. 그런데 아베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세의 격변을 이유로 이를 재고해야 한다면서 ‘재해석 작업’에 착수하고 미국 영국 호주가 동조함으로써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도입은 가시적 현실로 되었다.

미·일 간에는 ‘상호협력 및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이 있고, 이를 집행하기 위한 ‘방위협력을 위한 지침’(일명 미·일 가이드라인)이 있다. 현행 지침은 1997년 9월 23일 제정된 것이기에 집단적 자위권이 도입되면 그에 따라 지침도 개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한·미 국가안보 담당 고위관리 간의 대화 가운데 나온 ‘앞으로 개정될 미·일 방위협력지침’이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그들의 대화 중에 나온 ‘한반도 주권행사와 관련된 부분’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예컨대 주한 미군이 북한의 미사일 또는 장사정포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국이 일본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요청하고 일본이 이에 응해 군사력을 파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이러한 경우 한국의 동의 없이는 안 된다는 게 한국 측 주장이었는데 대답은 “이해한다”고 나왔다.

주한 미군이 제3국으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 미국은 영역국인 한국의 동의 없이 미·일 방위협력지침상의 집단적 자위권을 원용해 일본의 군사력을 한국에 끌어들일 수 있는가? 이것은 일반 국제법상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국제관계에서 주권은 독립을 의미하고 독립은 자국 영역 내에서 타국을 배제하고 국가기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팔마스섬 사건에 대한 1928년 중재재판 판결). 독립에 대한 제한은 추정될 수 없는 것이다(로터스호 사건에 대한 1927년 상설국제사법재판소 판결).

지금 미 육해공군 병력이 우리 영역 내 및 부근에 배치돼 활동하고 있는 것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통해 우리가 그것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제4조). 영역국의 동의 없이 타국 영역에 밀고 들어감은 침략이 된다(1974년 침략의 정의에 관한 유엔 총회 결의 제3조 a). 한·미 상호방위조약에서 우리가 허가한 것은 우리 영역 내 및 부근에서의 미군의 배치와 활동이지 어떤 근거에서든 미국이 제3국의 병력을 끌어들이는 것까지 허가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춰 볼 때 워싱턴에서 있었던 우리 대표의 발언은 당연한 법률관계를 ‘확인’ 내지 ‘재확인’하려는 것이었지 새로운 권리의무 관계를 창설하려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되돌아 온 반응은 “이해한다”는 말이었다. 이것은 “이해는 하지만…”이란 여운을 남기는 말로 들려 격화소양(隔靴搔 ?)의 감을 가지게 하는 표현이다. 일의 신축성 있는 운영은 법률관계가 명확히 된 후에야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호관계에 금이 갈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김찬규 국제해양법학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