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임장혁] 남·북·러 물류협력의 전제조건

입력 2013-11-06 17:42


정부가 남·북·러 물류 협력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달 중순 방한하면 MOU를 체결하기 위해 러시아와 구체적인 투자 방식과 내용에 대해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을 실현하는 핵심 방안으로 이른바 북·러 간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활용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여년간 북한과 러시아는 합작투자 형식으로 시베리아횡단철도(TSR)과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사업을 추진해 왔고 2007년 나진∼하산 간 철도 개통 이후 5년간의 개보수 끝에 지난 9월 재개통했다. 북한은 나진항 부지를 현물 출자하는 형식으로 본 사업에 참여했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담은 없었지만 러시아는 철도 개보수와 현대화 사업에 공사비 약 3000억원을 부담했다. 그러나 재개통 후에도 북·러 간 화물 운송량이 거의 없기 때문에 러시아도 남·북·러의 삼각 물류 협력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구상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동안 한국과 러시아는 한·러 철도협력 의정서 교환(2001), 한·러 교통협력위원회(2001·2002)를 통해 TKR-TSR 연계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고 남·북·러 3자 철도전문가회의(2003), 남·북·러 철도장관급회의(2006)를 통해 3국 간 물류 협력에 대한 기본 입장을 협의해 상당한 진전을 이룬 경험도 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 들어 남북관계 경색으로 인해 사업 추진이 보류된 상태다. 남·북·러 물류 협력은 김대중정부에서 처음 제안되었는데 남·북·러 물류 협력 현실화로 남북 경협사업뿐 아니라 관계국 간 미래지향적인 패러다임 형성이 목적이었다.

남·북·러 3국은 연간 컨테이너 50만개 수송이 가능한 물류 협력으로 동북아 경제 활성화뿐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통한 동북아 안정 등 선순환 구조 형성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남·북·러 물류 협력은 한·러 간 협력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최근 남북관계의 유화적인 흐름이 감지되고 있지만 물류 협력이 이뤄지려면 남북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북한 내륙철도 운용에 대한 제도적, 법률적 부분을 논의해야 한다. 지난 2007년 경의선과 동해선에서 동시에 실시된 철도 시험운행 이전인 2004년 열차운행 합의서가 체결된 바 있지만 이 합의서는 군사분계선 내 역 사이의 운행에 국한되기 때문에 이 합의서에 근거한 나진까지의 열차운행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신호·통신 체계와 전차선 등 열차 운영을 위한 인프라의 개선 및 역량 확충도 논의 대상이다. 북한 인프라의 낙후로 인해 북한 내 평균 열차 속도는 25㎞ 내외이기 때문에 북한 철도 인프라 개선 없이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라 할지라도 고속·대량 수송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남북은 2006년 경의선 및 동해선 동시 열차 시험운행을 실시키로 합의했으나 북이 예정 시험운행 전날 취소 통보를 하는 바람에 열차 시험운행은 성사되지 못했다가 재협상을 거쳐 2007년에야 시행된 바 있다.

정부는 나진·선봉지구 진출 실패, 최근의 개성공단 폐쇄 등 북한과의 경제협력에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상존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제 북한 및 러시아와의 협의를 통해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실패 경험이 반면교사가 돼야 한다. 남·북·러 물류 협력 실행을 위해 무엇보다 북한이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협력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런 후에 3국이 분명한 보장 방안에 합의해야 한다.

임장혁 퀴네앤드나겔㈜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