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 4년 만에 신작 ‘만년양식집’ 발표
입력 2013-11-05 19:48
자신의 분신 ‘조코 고기토’ 통해 동일본 대지진 참상·희망 관조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78·사진)가 신작 ‘만년양식집(晩年樣式集·고단샤)’을 펴냈다고 아사히신문 등이 5일 보도했다. 2009년 ‘익사’ 이후 4년 만에 내 놓은 이 작품은 자신의 분신 격인 소설 속 인물 ‘조코 고기토’를 내세운 ‘조코 연작’의 6번째 작품으로,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 이후 급변한 자신의 창작생활을 생생하게 담았다.
작가인 조코는 파괴적 재앙을 겪은 세계와 70대 후반에 접어든 자신을 관조하는 글을 쓰고, 조코의 일가족은 조코의 글에 대해 반론문을 쓰게 되면서 결국 조코와 그 가족들의 글을 묶은 ‘가족판’ 잡지가 나오게 된다는 것이 신작 소설의 설정이다.
이 소설의 시작은 주인공이 어느 심야에 후쿠시마의 참상을 전하는 TV프로그램을 본 뒤 눈물을 흘리며 “우리들이 살아있는 동안 회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탄식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소설 마지막에 등장하는 자작시는 ‘나는 다시 살 수 없으나 우리들은 다시 살 수 있다’는 등 삶에 대한 강한 긍정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전했다.
‘조코 연작’은 오에의 친구인 미국의 문명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가 사망하기 직전, 보내온 논문을 오에가 읽고 자극을 받아 집필에 들어간 소설이다. 그는 지난 2005년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을 당시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오랜 친구 사이드가 죽기 1주일 전에 나에게 논문을 보내왔다. 그가 논문을 통해 나에게 보내려던 메시지는 ‘작가는 마지막에 지금까지 했던 일과는 다른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맞다. 젊은 시절에는 나이가 들면 여러 모순들이 해결되고 생과 화해하리라 생각했는데 그 반대다. 생의 모든 모순들이 더 극명해진다.” ‘조코 연작’의 하나인 ‘책이여 안녕!’엔 오에의 분신이라 할 일흔에 가까운 노벨상 수상작가 조코 고기토가 등장하는데, 공교롭게도 핵무기로 상징되는 국가와 세상의 거대 폭력에 맞서기 위해 벌이는 모의 테러에 가담한다. 하지만 폭발실험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고기토에게 비난이 쏟아지는데, 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고기토가 세상과 문학에 대한 작은 희망을 찾아낸다는 내용이다. 작가의 문학적 자서전과 테러라는 기이한 일탈의 세계를 교직해내는 책에서 작가는 만년에 맞는 생의 모순에 대해 답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오에는 현재 고령에도 불구하고 평화헌법 수호, 원전 재가동 반대 등과 관련한 집회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는 등 사회참여적 지식인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