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한·일 관계 복원력 다 없어지기 전에
입력 2013-11-05 18:26 수정 2013-11-05 12:37
“원칙론보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또한 공감할 수 있는 대화 앞세워야 한다”
한·일 관계는 때로 악화될 경우도 적잖았지만 늘 곧 회복하곤 했다. 때문에 오랫동안 일본을 관찰해오면서 양국 사이에는 관계 정상화를 꾀하려는 복원력이 체화돼 있다고 믿었다.
지난해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전격적인 독도 방문과 천황 사죄 요구발언 등으로 한·일 관계가 험악해졌을 때도 복원력에 대해서는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양국에 각각 새 정부가 들어설 테니 새 리더들에 의해 양국 간 복원력은 이전보다 더 잘 작동될 것으로 봤었다.
하지만 관계 회복의 계기가 될 수 있는 한·일 양국 정상회담은 새 정부 출범 후 지금까지 열리지 않고 있으며 현재로선 아예 열릴 기미조차 안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올 9, 10월에 열린 여러 국제회의에서 자주 마주쳤지만 데면데면한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한·일 관계는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갈등의 원인을 점검하고 복원력 작동을 위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내용의 크고 작은 세미나와 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나 역시 지난 30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마련한 ‘한·일 편집간부세미나’, 1일 ‘한일문화포럼 국제심포지엄’, 2일 ‘대일 전략세미나’ 등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양국 관계의 비정상 상태를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제기됐었다.
‘한·일 편집간부세미나’에서는 ‘양국 관련보도의 특징과 과제’를 주제로 독도, 일본군위안부, 역사교과서, 야스쿠니신사, 후쿠시마원전 등에 대해 사안 별로 논의했다. 대부분의 사안이 과거사문제와 연계돼 있다는 입장에서 보도를 하고 있음이 한국 측 보도의 특징으로 확인됐고 일본 측은 일본 사회에도 다양한 견해가 있다는 점에 이해를 구하면서 무엇보다 반일·반한을 부추기는 보도는 서로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부분은 최근 일본에서 제기되고 있는 ‘사과 피로증’, 즉 ‘대체 언제까지 사과하라는 것이냐’는 문제였다. 이에 대해 한국 측은 일본 정부가 그동안 사과해온 것은 인정하지만 주요 정치가들이 기존의 정부 공식사과를 부인하는 태도를 종종 취해왔기 때문에 사과를 거듭 요구하는 것이 아니냐고 되받았다. 그러자 더 이상 반론은 없었다. 이처럼 갈등의 여지가 커 보여도 대화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공통의 이슈를 확인하는 데 매우 유용한 수단임을 거듭 확인했다.
한·일문화포럼은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와 권철현 전 주일 한국대사의 강연으로 시작해 패널토론으로 마무리됐다. 무토 전 대사는 가치관과 상호이익에 바탕을 두고 관계 강화를 위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정상회담 조기개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권 전 대사는 한·일 관계가 특수한 것인 만큼 문화교류가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다차원적인 한·일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패널토론에서도 현재의 갈등만을 문제 삼는다면 양국 관계는 퇴보하고 말 것이라며 좀더 적극적인 대화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대일 전략세미나는 비공개 원칙이었기에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 없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도 한·일 대화, 전략적 협력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그런데 과연 대화가 이해의 시작이란 점을 박근혜정부는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29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한·일 편집간부세미나’ 환영리셉션 축사에서 “현재로서는 (한·일 관계) 터널 끝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언문 낭독과 같은 윤 장관의 축사로만 판단할 때 정부는 여전히 원칙론만 고수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한·일 간 갈등은 이제 경제관계에까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지난해 전년보다 큰 폭으로 늘어난 일본의 대한 직접투자(FDI)는 올해 큰 폭으로 줄고 있다. 마찬가지로 올 들어 대일 월별 수출증가율은 마이너스행진을 이어가고 일본관광객은 급감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결단이 요청된다. 복원력이 다 닳아 없어지기 전에.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