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만우] 후순위채권과 기업어음

입력 2013-11-05 18:26 수정 2013-11-05 12:31

동양그룹 기업어음(CP) 및 회사채 부도사태의 피해가 심각하다. 저축은행 후순위채권 악몽이 가시기도 전에 고금리 사탕발림 불량채권이 또다시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판매책 동양증권에 원성이 집중되면서 자책감으로 여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도 발생했다.



후순위채권과 기업어음은 닮은꼴이다. 저축은행 및 종금사 업무를 승계한 증권사가 예금자보호 대상 금융상품과 함께 취급하고 있어 안전성 판단이 혼란스럽다. 예금자보호 대상인 저축은행 예금과 증권사 어음관리계좌(CMA) 고객을 꼬드겨 옮겨 타도록 유혹하는 수법도 똑같다.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게 후다닥 설명하고 확인서명을 챙기는 수법도 그대로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대출) 부실로 결손이 누적되자 일부 저축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보완자본으로 인정되는 후순위채권으로 갈아타도록 예금고객을 유인했다. 동양그룹은 다른 사정이 있었다. 부실 징후를 감지한 은행이 대출금 회수에 나서자 자금이 필요했던 것이다. 계열사 기업어음과 회사채를 동양증권을 동원해 판매해 자금을 마련했다. 증권사 고객 돈으로 은행 빚을 갚은 것이다.



은행이 동양계열사에 대출을 회수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기관 등 고액 예금자는 금방 빠져나갔다. ‘피해금액 2조원, 피해자 5만명’은 금액에 비해 피해자가 너무 많은 비정상 구도다. 기관 등 법인 피해자가 1% 미만인 특이한 상황이다. 부도사태가 발생하면 응당 집계되던 은행별 피해금액은 이번에는 찾을 수 없다. 산업은행을 제외하고는 은행대출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동양그룹 자금상황에 대한 금융당국의 우려는 곳곳에서 노출됐다. 금융감독원은 동양증권의 계열사 기업어음 판매의 문제점이 포착된 2009년 5월 기업어음 보유규모 감축 및 투자자 보호를 담은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금융기관 간의 자금이동을 파악하던 예금보험공사는 2011년 1월 동양증권의 불완전 판매와 투자자 소송 가능성이 포함된 보고서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했다.



저축은행 후순위채권의 경우 불완전 판매가 확인돼 예금을 물어주면 그 손실 대부분은 예금보험공사가 부담한다. 기업어음에 있어 불완전 판매가 확인되면 그 손실은 일차적으로 동양증권 책임이고 동양증권이 발행 계열사에 소구권을 행사하면 결과적으로 다른 예금자의 분배금이 줄어들게 된다. 최악의 경우 동양증권이 파산한다면 예금자보호 대상 예금은 예금보험공사 책임으로 귀착된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금융계열사를 이용한 부실을 막기 위한 조치가 강구됐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 23일 금융투자업 규정을 개정해 증권사가 계열사의 투자부적격 등급 회사채 및 기업어음을 투자자에게 권유하거나 고객 재산에 편입하지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다만 시행에 있어 6개월 유예기간을 뒀다. 유예기간을 3개월로 단축했더라면 손실을 일부라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중대조치는 증권사가 대비할 시간적 여유를 줘야 한다는 현실적 제약도 감안해야 한다.



동양사태의 클라이맥스는 오리온그룹의 자금지원 거부다.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돈을 넘어 설 수는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드러낸 것이다. 동양 측이 믿었던 최후의 보루는 자매그룹인 오리온의 지급보증이나 담보제공이었을 것이다. 상장회사인 오리온의 대주주로서는 사회적 책임에 충실한 정당한 결정이었다. 한진해운에 대한 자금대출로 인해 엄청난 주가하락에 직면한 대한항공 사례가 반면교사다.



동양사태 피해자는 몇 천만원이 전 재산인 서민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금융공직자 모두 깊이 새겨야 한다. 부실 책임과 불완전 판매를 철저히 가려내 손해를 한 푼이라도 줄여야 한다.

이만우(고려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