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직선과 곡선
입력 2013-11-05 18:27
생태계의 여러 기능 가운데 보통 에너지의 흐름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자연계에서는 모두가 다른 누군가를 먹음으로써 에너지가 그침 없이 이동한다. 에너지의 소멸은 곧 죽음이며, 종의 생존여부는 최적의 에너지 사용에 달려 있다. 따라서 자연은 일을 할 때 언제나 최소한의 에너지와 최소한의 원료를 사용한다. 자연의 관점에서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에너지 부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은 직선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자연에 직선이 없는 이유는 지구가 둥글기 때문이다. 개체는 전체를 닮게 마련이다. 무질서하게 보이는 야생의 기저에는 소용돌이 패턴, 즉 나선구조가 편재해 있다. 똬리를 튼 뱀, 조개껍데기와 달팽이집. DNA의 이중나선 구조, 모든 포유동물의 달팽이관 등이 모두 나선형이다. 매우 효율적인 인간의 심장 혈관 시스템은 9.6㎞의 배관으로 이뤄져 있지만, 그 안에 일직선인 배관은 없다.
자연에서 물과 공기는 언제나 나선형으로 움직인다. 태풍, 수채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물의 소용돌이, 불에서 피어오르는 나선형 연기, 구불구불한 자연하천을 보라. 해양생물학자이기도 한 사업가 제이 하먼이 쓴 ‘새로운 황금시대’에 따르면 태양표면 폭발의 불꽃에서부터 일기예보에 나오는 전선과 섬 뒤에서의 구름 형성, 모든 생명체의 성장 패턴까지 나선구조의 목록은 끝이 없다. 벌과 나비는 언제나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맹금류가 사냥을 할 때에도 직선으로 사냥감을 향하는 게 아니라 활모양으로 곡선을 따라 표적에 접근한다.
오직 인간만이 직선을 만든다. 인간은 점과 점간의 이동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직선이라고 보고 직선이동을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에너지 효율이 30%에도 못 미치는 내연기관을 실은 자동차의 고속 이동을 위해 만든 직선도로, 직사각형의 아파트와 건물, 들쭉날쭉한 해안선을 없애고 갯벌을 메워 만든 인공시설, 사행천(蛇行川)을 직선화한 4대강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최근에는 더 빨리 이동하려고 굽은 길을 직선화한 구간, 그리고 높은 교량과 장대터널을 이은 고속도로가 늘고 있다. 그 도로 위에서는 높은 가드레일에 가려 단풍도, 계곡도 볼 수 없다. 직선의 교통수단은 무엇보다 큰 역작용으로 숱한 사람과 동물을 죽인다. 우리는 자연의 효율적인 나선 구조를 각 부문에 적용하고, 곡선을 복원함으로써 다른 희생 없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환경과 생태계를 보호할 수 있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