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로 강풍 뚫고 140㎞로 급커브 통과… 극한을 달리다

입력 2013-11-05 18:19


운전석에 앉은 제프 헴룰(44)이 빗길에서 갑자기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꺾었다. 계기판을 보니 시속 200㎞에 분당 엔진 회전수(RPM)는 6000. 엄청난 충격이 가해질 상황이었지만 몸은 잠깐 왼쪽으로 쏠렸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지만 차는 한 차례도 미끄러지거나 속력을 줄이지 않고 주행을 계속했다.

4일(현지시간) 독일 라인란트팔츠주(州) 뉘르부르크의 차량 장거리 주행시험장. 지명과 서킷을 뜻하는 ‘링’을 붙여 ‘뉘르부르크링’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현대차가 이달 출시할 신형 제네시스에 탑승해봤다.

운전을 맡은 헴룰은 지난 3월부터 9월까지 신형 제네시스를 테스트한 전문 드라이버다. 조수석 뒷자리에 앉아 주행을 체험했다. 짙은 푸른색인 차의 외부는 보안을 위해 검은색 천으로 덮여 있었다. 양산 직전의 최종 개발 단계 차다.

차는 서킷 출발점부터 속도를 냈다. 커브 구간에서는 평균 시속 130∼140㎞를, 직선 구간에서는 시속 200㎞ 이상으로 달렸다. 극한의 주행 조건에서 제 성능을 내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고속 급회전 구간에서 차체가 크게 흔들리지 않은 점이었다. 비교 대상이던 제네시스 쿠페는 급커브에서 세 차례 미끄러짐 현상을 나타냈다. 현대차 유럽기술연구소 차량시험팀 이대우 책임연구원은 “새로운 제네시스는 급커브에서 뒤틀리지 않는 횡강성이 이전 모델에 비해 39% 강화됐다. 독일 경쟁차보다도 더 좋다”고 말했다.

바람이 세게 불었는데도 시속 200㎞ 주행에서 바깥바람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은 점도 훌륭했다. 서킷의 총 길이는 20.8㎞. 하루에 30∼32바퀴씩 돌며 신형 제네시스를 테스트했다는 헴룰은 “이 차는 4륜 구동이어서 매우 안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현대차가 이곳에서 신차를 테스트하는 이유는 ‘유럽 감성은 유럽에서 찾겠다’는 모토에 따른 것이다. 뉘르부르크링은 전 세계 자동차·타이어 업체가 제품의 주행 능력을 테스트하는 곳이다. 급커브 구간이 73곳이나 있고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의 고도차가 320m에 이르는 등 험난한 조건으로 악명이 높다. 녹색 지옥(Green Hell)으로 불린다. 주변에는 개발 단계 신차의 모습을 미리 포착하려는 파파라치가 카메라를 들고 숨어 있다.

현대차는 1세대 제네시스에 대해 ‘절반의 성공’이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유럽에서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독일차와 경쟁해서 성과를 거둬야 진정한 성공이라는 것이다. 현대차는 “뉘르부르크링에서의 시험이 유럽에서 체득할 수 있는 유럽만의 특징적 주행기술을 뽑아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앞으로 출시할 상당수 차를 뉘르부르크링에서 언제든 시험하기로 하고 이곳에 자체 차량시험센터를 지었다. 지난해 6월 건설을 시작해 지난 9월 완공했다. 662만 유로(약 95억원)가 들었다. 이 연구원은 “유럽 업체들은 이곳에서 평가를 거친 차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그 사실을 마케팅에도 활용한다”고 했다.

신형 제네시스는 뉘르부르크링뿐 아니라 혹한 지역인 스웨덴 알제프로그, 혹서 지역인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 알프스 산악지대, 미국 모하비 사막지대 등에서도 성능 평가를 거쳤다. 현대차 관계자는 “고급차 시장에서 현대차가 독일차를 넘어설 수 있음을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뉘르부르크(독일)=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