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었나! 바람이었나! 뉴요커들의 치명적 사랑… 뮤지컬 ‘머더 발라드’
입력 2013-11-05 18:14
애절한 사랑의 종말을 담은 뮤지컬 한 편이 가을을 적신다.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사랑의 결말은 ‘총 맞은 것처럼’ 아프다.
‘머더 발라드’는 2012년 말 미국 뉴욕의 오프브로드웨이(실험적인 소극장 운동)에서 초연됐고, 지난 5∼7월 유니언스퀘어에서 재연됐다. 매일 공연 시작 전 줄이 공연장을 빙 둘러 쌀 정도로 인기였다. 초연 배우들의 음반도 발매됐다.
뮤지컬 제작자가 관객에게 사랑을 재료로 팝콘이나 솜사탕을 만들어 맛을 중독시키기는 쉬운 일. 공연장은 그 익숙한 맛을 즐기려는 이들로 입장 전까지 늘 소란스럽다. 그러나 막이 내린 뒤 사랑의 판타지에서 풀려난 관객은 쓸쓸하고, 허전하다. 사랑, 그것 참…이다.
‘머더 발라드’는 바로 이러한 허전함에 답한다. 그것도 노래로만(Song-through) 말이다. 90분 동안 애절한 사랑이 귀를 간질이고, 귀를 멀게 한다. 사랑을 쥐었으나 바람을 쥐었고, 바람을 쥐었으나 사랑을 쥐었다.
뉴요커 사라와 탐.
어린 시절 만나 불같은 사랑을 한다. 불을 쥔 두 사람. 그러나 지루한 일상은 바람을 부르고, 탐은 바람을 타고 떠난다. 실연의 상처에 비틀거리는 사라. 그 앞에 ‘가을 낙엽의 시인’ 마이클이 다가와 손을 내민다. 결혼, 아내, 아이, 편안한 소파….
하지만 사라에게 첫사랑의 상처는 독이 됐고 그 독으로 인해 소파를 벗어나 밤거리 바를 찾게 된다. 한데 그 바에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만나게 될 줄이야….
뉴욕타임스는 “풍부한 감각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형식의 뮤지컬”이라고 평했다. 뉴욕 바를 옮겨다 놓은 무대에서 탐, 사라, 마이클이 부르는 세레나데가 관객의 귀를 간질이기 때문이다.
“너라는 내 삶이 기다리지 않을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올까 두려워.”
이 노래에 여인은 귀가 먼다. 그러나 여인은 이내 절규하는 노래를 부른다.
“사랑, 추잡하고 더러워. 세상에 영원한 건 없겠지!”
그럼에도 영원을 찾는 세 사람이다. “햇살보다 눈부신 건 당신 뿐”이라고 노래하며 말이다. 이 ‘애절한 뮤지컬’은 자칫 뮤지컬이 갖는 흥을 잃고 극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클럽이 무대이다 보니 록 음악이 실린다. 바 안에서 보이는 격렬한 몸짓과 의상은 욕망이다. ‘쇼걸’인 듯한 극 내레이터의 퇴폐적 춤과 노래는 따로 인 듯한데 녹아든다. “제가 부르는 비극을 들어봐요”의 가사가 말해준다.
탐 역에 최재웅 강태을 한지상 성두섭, 사라에 임정희 장은아 린아 박은미, 마이클에 홍경수 김신의, 내레이터에 홍륜희 문진아이다. 영화배우이면서 뮤지컬 제작자인 김수로가 뉴욕 현지 공연을 보고 10분 만에 ‘한국 초연’을 결정했다. 연출은 ‘풍월주’ ‘유럽블로그’ 등을 연출한 이재준이 맡았다. 내년 1월 26일까지 서울 합정동 롯데카드아트센터(02-556-5910).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