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일반인까지 파고든 불법 스테로이드 정부가 사태 심각성 몰라 더 문제”

입력 2013-11-06 05:28


불법 약물 추방운동 스포츠트레이너 박진만씨가 말하는 실태

“스테로이드 약물은 체력시험을 보는 경찰·소방 공무원은 물론이고 군부대, 태릉선수촌, 대학가 등으로 무차별 확산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사태 심각성을 너무 모르고 있어요.” ‘블랙비’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유명 스포츠트레이너 박진만(40)씨는 2009년부터 스테로이드와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과거 일부 운동선수들이나 사용하던 스테로이드 약물이 도덕성을 요구하는 공무원 사회는 물론 일반인에게까지 확산되자 직접 발 벗고 나섰다. 2년간 건강 칼럼니스트로도 활약한 그는 “이 세계(트레이너) 사람들한테 외면 받는 처지가 됐지만 스테로이드는 꼭 뿌리 뽑아야 한다”고 했다. 지난 4일 인천 경서동 자택에서 박씨를 만났다.

박씨는 “찾는 사람이 많으니 지하시장이 활성화되는 게 당연하다. 내가 확실히 인지한 브로커만 열 팀이 넘는다”며 입을 열었다. 보충제 먹는 것조차 감출 정도로 예민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새 보충제는 당연한 수단이 됐고 대신 스테로이드가 암암리에 급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홀로 스테로이드 실태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박씨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하는 태릉선수촌과 육군사관학교 등 군부대에서 불법 스테로이드 약물이 사용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에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선수가 복용 의혹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모두가 쉬쉬하고 있지만 운동선수는 물론 일반인들에게까지 스테로이드의 유혹이 너무 쉽게 뻗친다”고 증언했다.

그는 스테로이드 약물을 단독으로 쓰지 않고 브로커에게 구입한 각종 약물을 혼합해 사용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씨는 “선수들도 의사 처방 아래 세심하게 스테로이드제와 호르몬제를 번갈아가며 조절한다”며 “그러나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불법 유통된 약물을 자기가 알아서 복용하니 부작용에 무방비로 노출된다”고 말했다. 약물 부작용들을 다스리려고 인슐린주사나 호르몬제를 잘못 써 고생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는 “약물로 가꾼 몸이 거품처럼 꺼질 때 우울증까지 겪는 경우도 자주 봤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유통되는 약물은 출처도 불확실하다. 대다수 브로커들이 약물을 동남아에서 공수해 온다고 박씨는 설명했다. 지난 1일 서울중앙지검이 기소한 유통업자들도 태국에서 약물을 밀반입했다. 그는 “독일제 약물은 그나마 안정성이 있는 편인데 동남아에서 유통기한조차 알 수 없는 약물을 들여오는 게 태반이라 위험성은 배가 된다”고 지적했다.

미성년자들이 스테로이드에 손대는 것도 문제다. 그는 “체대 입시를 준비하거나 보디빌더를 꿈꾸는 새싹들이 점점 더 약물에 기대고 있지만 어린 친구들의 의존은 더 치명적”이라며 “아는 후배는 22세인데도 스테로이드를 쓰다가 호르몬 문제가 생겨 발기가 안 된다”고 경고했다.

불법 약물은 일반인 사이로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극소수 운동선수만 사용하던 약물이 왜 일반인에게까지 확산됐을까. 박씨는 ‘몸짱’ 열풍이 단초를 제공했다고 본다. 그는 “몸매 가꾸기에 관심이 많은 젊은 층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대학가에도 이런 약물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이들은 부작용에 대한 지식이 없어 심각한 후유증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아마추어나 일반인이 몸매를 겨루는 ‘뷰티 대회’가 늘어난 것도 불법 약물 확산의 원인이 됐다. 2009년 무렵부터 각광받기 시작한 뷰티 대회는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전국에서 수시로 열린다. 하지만 프로 대회가 아니어서 대한보디빌딩협회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박씨는 스폰서 유치와 홍보에 주력하는 대회 주최 측은 참가자 다수가 스테로이드에 의존하는 상황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약물 관련 규정을 만들고 입상자라도 도핑테스트를 해서 걸러내야 하지만 대회를 통해 ‘스타’를 배출해야 하는 주최 측은 입상자 대다수가 약물을 썼을 것임을 알기에 나서지 못한다”고 했다. 이렇다보니 중견 대회에서도 참가자 절반이 약물에 의존하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고 한다. 박씨는 “‘머슬***’라는 대회만 언론을 의식해 소변검사를 한 걸로 안다”며 “주최 측에 제재를 가할 수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스테로이드를 마약에 비유하며 정부가 법으로 엄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테로이드도 더 이상 일부 선수만의 문제가 아닌 일반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며 “부작용과 위험성이 큰 만큼 정부가 개입해 불법적인 유통과 복용을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번 기회에 스테로이드 문제를 뿌리 뽑아야 한다”며 “몸짱 열풍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해 오히려 약물을 알리는 수준에서 어설프게 끝나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인천=전수민 조성은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