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분석] 대통령 없는데 ‘민감한 사안’ 신속처리 왜

입력 2013-11-05 17:54 수정 2013-11-05 22:31


문재인 소환 이어 통진당 해산심판 청구… 대통령 정치적 부담 덜기 포석?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일 서유럽 순방을 떠난 직후 민감한 대야(對野) 정치 사안들이 신속히 처리되고 있다. 대선 후보를 지낸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박 대통령 출국 당일 검찰 소환 통보를 받았고,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청구안은 5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대통령이 없는 사이 큰일이 연이어 터지자 야당은 “공작정치의 부활” “정치는 없고 통치만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문 의원의 참고인 소환에 대해 야당 탄압 또는 정치 보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 의원이 피의자가 아님에도 검찰이 무리하게 소환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통진당 건도 헌정사상 초유의 일인데다 ‘이석기 사건’의 재판이 끝나기 전에 조급하게 처리됐다는 점에서 정치적 목적이 다분하다는 생각이다.

이 같은 판단에는 박 대통령이 국내에 없는 동안 골치 아픈 정치 이슈를 몰아서 처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부담이나 책임소재를 줄이려 한 것 아니냐는 시선이 깔려 있다. 예를 들어 이명박정부 시절의 경우 지난해 6월 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국무회의에서 비공개 처리됐다가 후폭풍이 일자 당시 청와대는 이 전 대통령이 남미 순방 중이라 자세히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취지의 해명을 했다. 하지만 국무회의 의장인 대통령이 몰랐을 리 없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었다.

민주당 정성호 원내수석부대표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청와대가 이번에 정략적으로 시기를 택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며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 해외에서 일한다는 이미지를 강조하고, 여야는 국내에서 정쟁이나 한다는 이미지를 심는 것은 위험한 정치”라고 비판했다. 박지원 의원은 정당해산 심판 청구에 대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안정국으로 모는 것이 아니냐”고 염려했다.

야당이 독기가 오르다 보니 해외에 머무르고 있는 박 대통령을 향한 비난만 거세지고 있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무신불립(無信不立) 정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믿음을 잃은 정권은 나라 전체를 어지럽히고 힘들게 한다”고 말했다.

정당 해산 위기에 놓인 통진당 홍성규 대변인은 “대통령마저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국무위원들이 도둑고양이처럼 (정당해산 심판청구안을) 처리했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새누리당은 야당의 반발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통진당 해산 문제는 지난 4월부터 거론이 됐고, 그동안 당에서도 논의가 됐다”며 “(순방 기간 등) 시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유일호 대변인도 “대통령이 일부러 책임을 회피하는 사안들도 아닌데 처리 시점이 뭐가 중요하냐”고 거들었다.

그러나 여권 일각에서도 ‘대선 불복’ 논란이 거론될 정도로 가뜩이나 깊어진 박 대통령과 야당 사이의 불신의 골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소환 통보를 받은 문 의원은 6일 오후 2시 검찰에 나갈 예정이다. 문 의원의 검찰 출석은 여야 관계에 악재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