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작품으로… 패션으로… 한글, 거리서 만나다

입력 2013-11-05 17:17 수정 2013-11-05 19:18


한글 자모 24개로 표현할 수 있는 소리는 이론적으로 1만1000여개에 이른다. 한자로 적을 수 있는 소리는 420여 가지, 일본어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는 300개 남짓에 불과하다. 맥도날드 햄버거를 중국어로는 ‘마이땅라오 한빠오빠오(麥當勞 漢堡包)’, 일본어론 ‘마쿠도나루도 함바가(マクドナルド ハンバ-ガ)’로 읽지만 한글로는 원래 발음에 가까운 ‘맥다나알즈 햄버거’로도 표기할 수 있다.

대부분의 언어를 소리 나는 대로 재현할 수 있는 한글의 표현력은 경이롭다. 문자가 세상의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순 없다지만 한글은 거의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 문자다. 과학성과 실용성 이외에도 한글이 지닌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뛰어난 예술성과 탁월한 호환성 역시 주목받는 진면목이다.

최근 다양한 공공디자인에 적용된 한글은 인공의 일상 속에 자연을 닮은 문자의 차별화된 근사함을 선사하고 있다. 멋스럽기까지 한 문자의 개성은 세계적인 의상 디자이너들이 자신들의 작품에 한글을 등장시킨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런 모습은 한글의 지평을 넓혀 입체적인 세계화를 추진하는 작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대학의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 중인 크리스티나 데봄(27·여)씨는 “문자 속의 동그라미가 너무나도 매력적”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한글의 조형미에 매료돼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된 네덜란드 유학생은 “한글의 음성 역시 외국인들에게 정감이 있고 명랑하다”고 강조한다.

한글은 디지털 시대에 가장 유리한 문자라는 사실로도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컴퓨터 자판에서 입증된 한글의 효율성은 스마트폰에서도 고유한 문자 입력방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문자의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한글은 표음문자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고, 번거로운 이중 전환 방식이 전혀 필요 없다.

한글날이 23년 만에 다시 공휴일로 지정된 올해는 ‘위대한 유산’의 상속자들에게 주어진 과제가 더 무겁게 다가온다. 갈수록 한글 파괴와 같은 현상적 문제들은 심각해지는 반면, 일상 속에서 한글을 살찌우고 다듬는 작업은 지지부진하다. 단순 문맹률은 세계 최저 수준이지만 문자를 통한 고급 정보의 수용 여부를 나타내는 실질 문맹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중 여전히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문자 판독이 더 큰 소통으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은 세계 최고의 ‘굳은모’(하드웨어의 순우리말)를 지닌 우리들의 빈약한 ‘무른모’(소프트웨어)를 드러낸다.

우리 글 바루기(바르게 하기)와 벼리기(가다듬기)가 일상 속에 널리 퍼질 때, 한글이란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고 세계를 오롯이 품는 글소리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다.

사진·글=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