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서울 성동구 사는 베트남댁, 이젠 ‘성동 이씨’ 이름은 ‘서연’
입력 2013-11-05 04:58
‘가오티홍탐’.
고향 베트남을 떠나 한국에 시집온 지 5년. 지난 4월 마침내 한국 국적을 얻은 가오 티홍탐(28·여)씨가 가족관계등록부를 받아들고도 마냥 기쁘지 않았던 것은 이름 때문이었다. 본적은 빈 칸이고 성명란에는 ‘가오티홍탐’이라고만 돼 있었다. ‘가오’가 성, ‘티홍탐’이 이름이지만 그의 가족관계등록부에는 아무런 구분이 없었다.
한국 생활 6년차에 접어든 그는 이 이름을 대할 한국인의 시선이 두려웠다. 다섯 살 아이는 곧 유치원에 가서 또래와 어울릴 터였다. 아이가 엄마 이름 때문에 곤란해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가오씨는 거주지 관할인 서울 성동구청을 찾았다. 성동구는 지난 6월부터 대한법률구조공단과 함께 다문화가족 결혼이민자에게 무료로 성(姓)·본(本) 창설 및 개명을 해주고 있다. 가오씨는 구내 작명소의 재능기부로 ‘이서연’이라는 새 이름을 만들었다. 주소지인 성동구로 본을 삼아 ‘성동 이씨’ 창시자가 됐다. 지난달 새 주민등록증을 받아든 이씨는 서툰 한국어로 “이제야 진짜 한국 사람이 된 기분”이라고 구청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국에 정착해 모국 이름 그대로 호적에 올렸던 이민자들이 한국식으로 개명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결혼이민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이민자들의 사회 활동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질적이고 외국인으로 혼동하기 쉬운 이름, 성별 구분이 곤란하거나 읽기 어려운 이름, 귀화 후 한국 이름을 원하는 경우에 개명이 허락된다.
최근엔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결혼이주 여성들의 개명을 돕고 있다. 이주민들이 한국어에 서툰 데다 성과 본을 만드는 개명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외국 성을 쓰는 한국 국적 취득자가 새로운 성·본을 정하려면 등록기준지로 삼을 곳의 가정법원 허가를 받아야 한다. 개명신청허가서에는 취지와 이유를 적고 호적등본과 주민등록등본 등 근거 자료를 첨부토록 돼 있다. 결혼이민 귀화자에 한해 성·본 창설과 개명을 동시에 신청토록 간소화됐지만 과정은 여전히 복잡하다. 법무사를 통하면 수수료 40만∼60만원이 들고 신청서 제출부터 판결까지 통상 1∼3개월이 걸린다.
성동구에 이어 결혼이민자 1300여명이 거주하는 도봉구도 지난달부터 결혼이민자 대상 ‘한글이름 지어주기 및 무료 법률구조지원’을 시작했다. 도봉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관계자는 “이름을 바꿀 필요를 느꼈지만 과정이 번거로워 엄두를 못 내던 결혼이민 여성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성동 이씨나 도봉 박씨 등 자신이 사는 동네를 본으로 삼아 이름을 만드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개명 신청 접수 건수와 인용률도 높아지고 있다. 2008년에는 14만6773건 중 12만9122건이 인정돼 인용률이 87.9%를 기록했지만 2010년에는 16만5924건 중 16만0918건이 받아들여져 인용률이 96.9%나 됐다. 올해도 9월까지 인용률 96.1%를 기록 중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가장 ‘갖고 싶었던’ 이름은 무엇일까. 대법원에 따르면 2008년부터 올 9월까지 가장 많이 선택된 남성 이름은 민준(3089건), 여성은 서연(7307건)이었다. 이 밖에도 지훈, 현우, 민성이나 지원, 서영, 수연 등의 이름이 인기를 끌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