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억지’ 스토리텔링·집중 이수제 ‘수박 겉핥기’… 잦은 개편이 화근
입력 2013-11-04 17:56
“자연과학 이론을 배경으로 하는 수학에 억지로 스토리텔링 수업을 접목하다 보니 오히려 학생들의 관심이 떨어집니다.”
“1년간 배울 과정을 집중이수제로 한 학기에 몰아서 하다 보니 교사는 쫓기듯 가르치고 학생은 많은 양의 시험공부 부담을 안게 됩니다.”
4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새교육개혁 창립 포럼에 참가한 현직 수석교사들 입에선 스토리텔링 수학, 집중이수제, 통합교과 등 현행 교육과정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왔다. 교과서나 교육과정 개편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수석교사 13명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개최한 포럼에서 “현 교과서는 잦은 교육과정 개편으로 내용이 뒤죽박죽이고 학생들이 배우기에 어려운 내용도 다수 포함돼 있다”며 “현장에 맞게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현장 교사들이 교육과정의 교과별 난이도와 학습량을 분석해 문제점을 제시한 건 처음이다.
교사들은 올해 처음 도입된 ‘스토리텔링 수학’에 가장 많은 문제를 제기했다. 스토리텔링 수학은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지난 3월 도입됐으며 현재 초등 1·2학년과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수업하고 있다. 내년에는 초등 3·4학년, 2015년에는 초등 5·6학년까지 순차적으로 확대된다.
고양외고 박성은 수석교사는 “수학에 억지로 스토리텔링을 접목하다 보니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외면받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보조교재로 자율학습을 위해 만들어진 익힘책도 오히려 학생과 교사에게 부담만 가중시키고 사교육만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특정 과목을 특정 학기나 학년에 집중적으로 학습하는 ‘집중이수제’도 비판의 타깃이 됐다. 오산 운암고 허성초 수석교사는 “중1 사회 과목의 12∼14단원은 정치·경제 등 매우 어려운 주제로 구성돼 있는데, 학습 효과가 떨어지는 학기 말이나 학년 말에 하게 돼 있다”며 “내용의 수준이나 학습량을 대폭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영어 과목은 사교육을 통해 벌어진 개인차가 심하고 수업 부적응 학생이 많다는 지적이 대부분이었다. 초등학교에서 게임과 노래를 중심으로 쉬운 표현을 학습하다 중학교에서 갑자기 바뀌는 수업 방법 및 학습량 때문에 부적응 학생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한국교육과정학회장을 맡고 있는 황규호 이화여대 교수는 “이 같은 교사들의 불신은 ‘잦은 개정’ ‘조급한 개정’ ‘단기간 추진’이라는 우리 교육과정의 특성 때문”이라며 “학교 현장의 충분한 준비를 바탕으로 경험을 중시하는 교육과정 개정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