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민간기업 KT에 낙하산 앉힐 꿈도 꾸지마라
입력 2013-11-04 17:52
이석채 KT 회장의 사퇴 과정은 5년 전 남중수 전 KT 사장이 물러날 때와 판박이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임기가 1년4개월 남은 이 회장에 대한 퇴진 압박설이 제기됐다. 이 회장이 버티자 검찰이 전방위 압수수색에 들어갔고 결국 이 회장이 백기를 들었다. 외국인지분이 44%에 달하는 재계 11위의 민간기업 수장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체되는 것은 참담한 노릇이다.
이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임직원들의 고통을 볼 수 없어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솔로몬 왕 앞의 어머니 심정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이명박정부 시절 낙하산으로 입성해 KT를 정권의 전리품으로 인식하게 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그의 억울함에 공감하는 국민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 회장의 재임 5년은 낙하산 인사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명박정부에 빚이 있다 보니 김은혜 청와대 전 대변인 등 MB정부 인사들을 임원으로 영입한데 이어 현 정부 들어서는 친박계 홍사덕 전 의원, 김종인 전 공동선대위원장, 김병호 전 캠프 공보단장 등을 고문 등으로 영입해 고액 연봉을 지급하면서 회사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낙하산 인사가 36명에 달한다니 전·현직 정부인사들의 재취업 전문기관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뒷전인 채 정권 눈치나 보면서 두둑한 연봉 챙기기에만 골몰하다 보니 회사가 망가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KT와 KTF 합병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고 아이폰 도입을 선도해 55개 계열사를 거느린 통신그룹으로 키워냈다는 임기 초반의 긍정적 평가는 퇴색됐다.
검찰은 표적수사라는 비판을 받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해 범법행위가 있다면 단죄해야 마땅하다. 이 회장이 물러난다고 해서 수사가 어물쩍 끝나선 안 된다. 이 회장은 KT 사옥 39곳을 감정가보다 훨씬 낮은 값에 매각해 회사에 손실을 끼친 혐의와 친인척 회사를 비싸게 인수해 특혜를 준 혐의 등 외에도 일부 임직원에게 급여를 과다 지급한 뒤 이를 돌려받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회장이 참여연대로부터 배임혐의로 고발당한 것은 지난 2월이었다. 검찰은 그동안 손 놓고 있다가 이제 와서 수사한 이유를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국감에서 제기된 무궁화위성 2호와 3호의 불법·헐값 매각에 대한 조사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 회장 후임으로는 KT 출신인사와 외부 IT전문가 외에 친박 출신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KT는 2002년 민영화해 정부 지분이 한 주도 없다. 행여 정부는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낼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KT나 포스코, KB금융 등 민간기업들마저 정권 입김에 흔들리다 보니 일류 기업으로 크지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