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자 대부분 일시금 수령 퇴직연금 제 역할 못한다

입력 2013-11-04 17:39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지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수급자 대부분이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수령, 자녀 학자금이나 창업자금 등으로 써버려 ‘안정적인 노후생활 보장’이라는 당초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성균관대 전용일 경제학과 교수는 4일 한국경제학회지에 발표한 ‘경제학이 없는 퇴직연금 시장의 실패’라는 보고서에서 “경제적 유인이 없는 제도의 설계로 인해 현재 퇴직연금은 안정적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연금’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에 연금 수급요건을 갖춘 55세 이상 퇴직자 중 일시금 수급자는 3만7명이며, 연금 수급자는 1742명에 불과했다. 퇴직금 조기소진 방지를 위해 퇴직연금이 도입됐으나 퇴직금을 한꺼번에 받는 근로자가 94.5%에 이르는 셈이다.

그나마 퇴직연금 유지율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개인형퇴직연금(IRP) 제도를 도입했지만 해지율이 높아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IRP 제도는 퇴직연금을 퇴직 시 의무적으로 IRP 계좌로 이전시킴으로써 퇴직금을 일시적인 생활자금에 사용하지 않게끔 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퇴직연금 통계에 따르면 IRP 가입자 수는 지난해 10월 74만8023명으로 크게 증가했으나 지난해 말에는 17만9534명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여기에다 규모가 작은 사업장일수록 재정적 부담을 이유로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꺼리면서 지난 6월 말 현재 퇴직연금을 도입한 사업장 수는 22만6994곳으로 전체 사업장의 14.1%에 그쳤다.

퇴직연금이 유명무실하게 운용되고 있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연금의 유용성에 대한 인식 부족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퇴직 연령이 자녀 교육비 수요나 창업욕구가 큰 50대 초중반에 몰려 있는 점 역시 일시금 수령이 많은 이유로 꼽히고 있다.

한화생명 최성환 은퇴연구소장은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달리 노후에 연금으로 부족함 없이 사는 것을 체험하지 못한 데다 외환위기 이후 근로자 상당수가 퇴직금 중간정산을 받은 연금 형태여서 받아도 가계 재정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학계나 업계에선 연금으로 수령하기 위한 강제·유도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삼성생명 박홍민 퇴직연금연구소장은 “일시금으로 찾을 경우 소득세 감면 혜택을 줄이고 연금으로 받을 때 세제혜택을 늘리는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또 영국처럼 최대 25%는 일시금으로 찾을 수 있고 75%는 연금으로 묶어두는 부분 단일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