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국립극장 ‘단테의 신곡’] 뮤지컬·창 버무린 총체극으로 완성
입력 2013-11-04 17:14
국립극장의 야심작 ‘단테의 신곡’이 지난 2일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고전 중의 고전인 13세기 이탈리아 시인 알레기에리 단테의 ‘신곡’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기대를 모았던 작품. 오는 9일까지 해오름극장에서 열리는 총 7회 공연 중, 판매 가능한 좌석 8043석이 4일 현재 모두 매진됐다. 1000석 넘는 해오름극장에서 매진 사례를 기록한 건 2001년 김석훈이 출연한 ‘햄릿’ 이후 처음이다.
극작가 고연옥의 손을 거쳐 한태숙의 연출로 완성된 공연은 연극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장르가 어우러진 집체극에 가까웠다. 국립가극단 단원들이 대거 합류해 곳곳에서 창(唱)이 등장했고, 단테(지현준)와 베아트리체(정은혜) 두 사람의 무대는 한 편의 뮤지컬을 연상시켰다.
극의 비중은 지옥과 연옥에 집중됐다. 한태숙은 “지옥에서부터 연옥까지, 우리가 구원되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안고 견디는 그 시간을 더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시동생 파울로와 사랑에 빠진 죄로 지옥에 떨어진 프란체스카의 이야기 등 지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흥미롭다. 특히 프란체스카를 연기한 박정자는 그가 70세를 넘긴 여배우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농염한 연기를 선보였다. 또 지옥의 판관 미노스와 지옥의 뱃사공 카론이 들려주는 창 역시 기괴한 지옥의 분위기와 묘하게 어우러졌다.
갈수록 인간이 저지른 추악한 죄를 눈으로 목격하면서도, ‘나는 죄가 없다’고 주장하던 단테. 그는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서 원작에는 없던 자신의 그림자와 맞닥뜨리고, 자신도 결국 죄인임을 고백한다. 지현준은 단테가 치열한 고뇌 끝에 결국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는 궁극의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좀 더 설득력 있게 그려내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곧 이어 등장하는 연옥 장면에서는 큰 경사면 무대가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이 이 곳을 기어오르는 모습을 통해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 점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환상적인 천국의 모습이 무대에서 어떻게 재현될까 기대했던 관객들이라면 큰 변화 없이 약간의 소품으로 대체된 천국의 모습이 실망스러울 것 같다. 특히 흰 옷 입은 천사 2명이 천국에 이른 단테를 맞이하는 장면에서 부르는 노래는 생뚱맞아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
관록의 연기력을 바탕으로 극을 이끌던 베르길리우스(정동환)가 사라진 뒤 단테와 베아트리체 두 사람이 펼치는 무대 역시 2% 부족한 느낌이다. 가장 중요한 구원의 메시지를 다루고 있음에도 그것을 표현하는 두 사람의 연기에 치열성이 부족해 극적 긴장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지옥’보다 ‘천국’을 그리기에 더 부족한 것이 아닌지 곱씹어보게 되는 공연이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