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래틀, 베를린 필과 마지막 내한 될까

입력 2013-11-04 17:13


한스 폰 뷜로(1830∼1894·독일), 빌헬름 푸르트벵글러(1886∼1954·독일), 세르주 첼리비다케(1912∼1996·루마니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오스트리아), 클라우디오 아바도(80·이탈리아). 20세기 클래식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계적인 지휘자들이다. 쟁쟁한 이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분모는 1882년 창단된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을 맡았다는 점이다.

베를린 필은 세계 3대 교향악단 가운데 1842년 나란히 창단된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미국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보다 역사가 짧다. 그럼에도 후발 주자의 한계를 딛고 세계 최고의 명성을 얻기까지는 오케스트라를 이끌어 온 내로라하는 마에스트로들의 힘이 컸다. 정명훈(60)과 주빈 메타(77·인도)가 빈 필과 뉴욕 필을 각각 이끌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으나 베를린 필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전통과 실력을 자랑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11∼12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2년 만에 내한 공연을 연다. 2002년부터 베를린 필을 이끌어온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57·영국)이 지휘봉을 잡는다. 1980년 스물다섯 살 때 영국 버밍엄시립교향악단 음악 감독으로 부임해 무명의 교향악단을 영국의 대표적인 오케스트라로 발전시킨 실력파다.

131년간 명실공히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베를린 필의 내한 공연은 1984년 이후 5번째, 래틀 취임 이후 4번째다. 카라얀에 의해 ‘오케스트라의 제왕’에 등극한 베를린 필은 아바도를 거치며 더욱 풍성한 예술적 색채를 띠게 됐다. 이후 래틀을 영입하며 전통 독일 레퍼토리뿐만 아니라 근·현대 작곡가의 세계 초연 작품까지 아우르며 21세기형 악단으로 재탄생했다.

이와 함께 전 세계로 베를린 필의 콘서트를 생중계하는 ‘디지털 콘서트홀’까지 도입하며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 시대를 열고 있다. 또 클래식 교육 프로그램을 정비해 관객층을 확대했다. 래틀은 무대에 오를 때마다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은 음악이 사치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며 “음악은 개개인의 삶을 이끌어가는 필수적이고 본질적인 요소”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독일 낭만파부터 현대음악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로 가을에 어울리는 황금빛 사운드를 뽐낼 것으로 기대된다. 11일에는 ‘봄’이란 부제가 붙은 슈만의 ‘교향곡 1번’과 신고전주의의 걸작인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 영국 출신 악장 다이신 카지모토(바이올린)가 협연한다. 올해 초연 100주년을 맞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도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12일에는 프랑스 현대음악의 계보를 잇는 피에르 불레즈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노타시옹’과 베토벤 이후 가장 위대한 교향곡 작곡가로 불리는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을 선사한다. 최근 베를린 필 아카데미에 합격한 함경(오보에) 장현성(바순) 등 한국인 연주자도 만날 수 있다. 2018년 악단을 떠나겠다고 발표한 래틀의 마지막 내한 공연이 될지도 모른다. 관람료 7만∼45만원(02-6303-1977).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